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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r 27. 2024

+ '전하고 싶은' 부분을 골라내는 일

20화 간결하다 못해 가벼워 못 견딜 단계까지 비우기

모든 사람에게는 누군가가 물어오면 이것만은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있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전하고 싶은' 부분을 골라내는 일. 그리고 전하고 싶은 부분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순서를 밟고 과정을 차근차근 밝히는 것. 이것이 긴 글을 쓰는 요령이다. 


과함도 부족함도 없을 때 비로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나온다.


어제의 일을 떠올려 본다. 인상적인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인상적이었던 이유, 그 바탕에 사상이 있다. 사상, '사회, 정치, 인생 등에 대한 일정한 견해나 생각'이 한 줄로 정리되면 그것에 관한 보편적인 생각과 개별적 사례를 정리한다. 이른바 자료 조사가 시작된다. 


자료의 조사를 통해 타인의 생각과 그들이 삶을 사는 지혜, 더욱 잘 살아내는 힘과 용기, 한 단계 도약하는 전환의 계기까지 발견할 수 있다.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존중과 사랑의 감정이 닿았다면 감정을 글로 풀어내면 된다. 이때부터 오로지 자신을 향한 글쓰기가 시작된다. 


위의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의 4가지 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의 경험
구체적 사례와 사건
사건의 의미
감성과 제언


이 단계를 이야기의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이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구조다. 글쓰기의 4단계로 말하면 '기-승-전-결'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4단계 구조를 조금 다르게 풀어쓰면,


오늘 A에 대해 생각했다.
A의 특징은 B이고 본질적으로 C로 분류할 수 있다.
B와 C는 삶에 있어서 D의 의미를 갖는다.
세상의 모든 D는 A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풍요로운 정신을 갖게 한다.


글쓰기는 구조의 바깥에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어수선한 글을 구조 안으로 끌어들여 '전하고 싶은' 것의 핵심을 걸러내는 작업이 바로 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의 구조를 세울 때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구조에 두세 가지의 이야기가 들어 있으면 그 구조는 어수선하고 짜임새가 없어지며 글의 흐름은 무너지게 된다. 


글을 쓰며 나 자신도 늘 구조의 틀을 벗어나서 곧 무너질 무언가를 열심히 쌓을 때가 있다. 불필요한 것들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을 따라가며 마음을 온통 빼앗기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한 편의 글로는 이미 쓸모없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는데도 버리면 큰일 날 것처럼 미련이 남아 놓지를 못한다. 심지어 모두 내가 낳은 자식처럼 애틋하다.


이때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의 중심 주제를 찾는 것이다. 주제를 벗어나는 이야기는 모두 불필요한 것이다. 과감하게 잘라 버려야 마땅하다. 간결하다 못해 가벼워 못 견딜 단계까지 걸러내면 그때 비로소 기본 구조가 보이게 된다. 




김초엽 작가는 글을 쓸 때 의식과 무의식이 3:7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무의식은 학술적 의미의 무의식이 아니다. 그냥 깊이 생각하지 않고 쓴다는 의미다. 구조, 도입부, 중간, 결말을 고심해서 구상하고 시작하지만 본문의 세세한 문장을 채워 넣을 때는 영혼을 어디 맡겨 놓은 것처럼 그냥 써 내려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쓴 글이, 결과물이 좋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글을 써 내려갈 수 없다. 일단 시작은 해야 하기 때문에.


문장 하나하나를 의식하며 여러 조언들을 시시각각 상기하며 쓴다면 완성은커녕 단 한 페이지도 채울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초고는 당연히 형편없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고쳐쓰기다. '전하고 싶은 부분'을 남기고 불필요한 얘기를 걸러내는 작업이 시작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무의식의 활약으로 완성한 글의 8할은 편집자에 의해 난도질당하고 만다고 말한다. 이른바 잘 나가는 작가도 그러할진대 누군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때 작가들은 자신이 쓴 글에 급격히 자신감을 잃는다. 글쓰기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이 내 글은 쓸모없는 글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기도 하다. 


거대하고 곧 무너질 엉터리 구조를 붙잡고 있는 것은 바로 서지 못할 블록 쌓기를 두 손에 잔뜩 움켜쥐고 억지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 같다. 차라리 다 버리자. 가볍고 간결한 골격 하나로 되돌아가라. 이것이 합리적이고 빠른 판단이다. 


뭉뚱그려 퇴고라고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촘촘하고 길고 어렵다. 한 번에 하나씩 발전시키면 된다. 불필요한 장면이 늘어진다고 느낄 때, 중요한 장면이 너무 후다닥 지나가는 느낌일 때, 감정이 격렬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빠른 장면전환이 필요할 때, 각각의 상황을 하나씩 강도를 측정한다. 하나씩 판단하고 삭제하거나 수정하면 된다.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할 때 편집자의 시선으로 엄격하게 글을 검토하는 것은 지양한다. 무의식이 지배한 글일지라도 칭찬할 부분을 찾아 아낌없이 칭찬한다. 되도록 스스로 검토하게 하고, 삭제하거나 수정해야 할 부분은 글의 분량을 조절함으로써 기본 구조를 세우는 방향으로 지도한다. 세세한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하거나 이야기의 부분마다 강도를 측정하게 된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을 쓸 생각을 접고 글쓰기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많이 덜어내서 가볍고 빈 듯한 구조의 의미와 감성은 언어의 도움으로 채우면 된다. 우리말은 단어 하나도 무한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언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등가 교환이 필요하지 않다.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통의 도구이면서 가치가 보장된 완벽한 도구이다. 누구나 품을 수 있으며 사용하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다.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해서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는 사람은 돈을 능숙하게 활용해서 부자가 되는 사람과 같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언어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 언어를 잘 활용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글을 지배하고 독자를 매료시킨다. 쉽고 편한 언어의 재배치를 나는 아이유의 노랫말에서 자주 찾는다. 


누구를 위해 누군가 기도하고 있나 봐.
숨죽여 쓴 사랑 시가 낮게 들리는 듯해.
---
홀로 걷는 너의 뒤에 그치지 않을 이 노래.(아이유, <Love poem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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