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요즘 비는 양동이의 물을 받았다가 붓는 것처럼 왈칵왈칵 쏟아지는 것 같다. 지난밤부터 그렇게 비가 왔다. 세찬 빗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잠에 빠졌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여명이 느껴지지만 눈을 뜨기 싫다. 지난밤부터 느껴지는 은근한 압박감은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나가야지 하는 마음과 오늘 하루만 지워버리고 싶다는 갈등이 공연히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빗소리에 어수선한 마음을 흘려보낼 수 있다면. 오늘 같은 날은 특히 그렇다.
번잡한 마음의 원인은 모임 때문이다. 아니다, 가는 길을 방해할 비 때문이다. 아니, 사람 때문이다. 아니다, 결론은 나 때문이다. 언제나 모임의 시작은 뻘쭘하고 끝은 어색하다. 다행이라면 과정은 괜찮은 편이다. 어제 올라온 알람 톡에는 한 사람이 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는 글이 달렸다. 경쾌하게 올라온 것 같은 글이지만 말 그대로 미안함이 느껴진다는 생각도 드는.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의 사정은 늘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올리는 글은 구구절절 왠지 핑계 같은데, 사실 핑계일 때가 없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글은 쓸데없이 진심이 느껴진다. 끄트머리에 은근슬쩍 끼워넣기하고 싶은 마음을 타이밍을 재다가 때를 놓치고 말았다.
매번 모임에 참여하기를 망설인다. 막상 가면 그 자리가 꽤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가는 길에서 느끼는 보람도 놓칠 수 없다. 하루에 걷는 걸음의 절반을 채워주는 그 걸음걸이가, 주변의 풍경이, 바람이 스치는 공기의 흐름과 움직이는 사람들의 기운이, 저마다의 생기가 다채로운 색을 입고 펼쳐지는 것 같아서 오래 걷기의 피로감을 잊을 정도다.
모임 장소에 가기까지는 학교를 다섯 개 정도 지난다. 초등학교 둘, 중학교 하나, 고등학교 둘. 아침부터 푹푹 찌는 여름날의 무더위에도 긴팔 후드티를 입거나 들고 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경험상 학교에서는 에어컨을 틀 테니 춥기도 하겠지 싶다. 에어컨 바로 아래 앉은 아이들은 여름 감기로 한기와 두통을 호소할 정도였으니. 아이들의 복장이 이해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혼자 있는 집에서 에어컨을 틀기는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것이 많았어서.
계절이 바뀌는 지금이 오히려 아이들 복장이 단출하다. 계절을 거꾸로 사는 것 같은 아이들의 모습은 그곳의 세상을 실제의 세상을 구분 짓는 것 같다. 마치 스스로 새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짠함이 있다. 학교에 있을 때에도 이제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늘 있었다. 50분 10분으로 나뉘는 타임스케줄에 맞춰 감정을 배제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미래의 어느 세상이 펼쳐지는 풍경 같은.
내가 학교를 벗어남과 동시에 학교의 속사정은 까마득한 기억 저편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기억은 아픈 것은 지우려 하고 좋은 것은 지키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여러 생각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아이들의 등굣길을 인상적인 풍경으로 바라볼 수는 있게 되었으니. 역시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한 자전거에 두 명의 아이가 탄 채로 나란히 핑크색 헬맷을 쓰고 지나간다. 언니가 동생을 태우고 등교하는 길. 언니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 꽤 의젓하고 믿음직해 보인다. 저 나이에도 누군가의 기댈 언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대견하다. 등굣길 횡단보도에서 아이들 안전을 책임지는 아저씨가 두 아이를 반긴다. 어서 오라고. 자전거에서 내려 건너라고. 중고등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아이들의 인사소리가 새소리처럼 길게 울린다.
동남아시아 여행을 가면 곳곳에서 나는 향내에 치미는 구역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냄새가 맛으로 바뀌며 격렬하게 거부하는 몸의 반응도 뒤따랐다. 그런 이유로 그곳의 음식은 입에도 대지 못했다. 가져간 음식으로 끼니를 채우거나 세계 공통의 맛을 찾아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을 찾곤 했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꽤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임이 있는 도서관 근처의 숲에 도착했다. 정문에 들어서기 전까지 짧은 거리지만 여느 숲 못지않게 다양한 물상을 볼 수 있다. 초입부터 짙은 짙은 곤충의 페로몬이 나를 반긴다. 나는 그걸 매미냄새라고 부른다. 곤충의 냄새는 가을 향기와 버무려지는 경향이 있다. 예민한 후각이 맛으로 치환되지 못하도록 계절이 뿜어내는 향기가 예민한 감각을 적절히 조절하는 역할을 해준다. 잠깐 더 걸으면 감나무가 반긴다. 익지 않고 떨어진 감이 두어 개. 누군가의 발에 차이고 자전거 바퀴에 밟혀 으깨진 감을 피해서 걸으면 길게 이어지는 하천의 시작점을 마주한다. 작은 다리 아래에 커다란 잉어 떼가 사람들이 지날 때마다 따라온다.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것일까. 비릿한 물냄새, 이끼냄새가 뒤따른다.
이제 목표점이 보인다. 도서관 앞마당에 도착하면 방문객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도서관 방문객은 아니고 동네 주민을 위한 체육시설 같은. 운동하는 사람이 한 명. 한적한 공간에 오카리나 연주하는 사람이 보인다. 아니 소리가 먼저 들린다. 음이탈이 없고 흐름이 일정한 것을 보면 공연 수준은 아니지만 꽤 연습한 듯하다. 난데없는 소리지만 한적한 공간에서 울리는 음률이 걷는 속도를 더디게 한다.
다섯 권의 책소개. 열 명이 넘는 등장인물의 목소리. 가끔은 한 사람의 독백만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각자 신중하게 고른 책에는 대화의 상황이 늘 들어가 있다. 차분한 목소리로 낭독하다 톡톡 튀는 대화의 상황이 나오면 목소리와 호흡을 달리해서 연기를 하기도 한다. 낭독이 끝나면 책과 관련한, 작가와 관련한, 인물과 관련한, 상황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낭독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때문에 두 시간은 늘 모자라다. 그래도 마치는 시간은 엄격히 지킨다. 그것이 모임의 규칙이고 다음에 다시 모일 기대와 기다림의 이유가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