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r. inside and outside
2주가 넘는 일정을 함께했던 은정을 보내는 건 너무나 힘들었다. 그를 실은 기차가 떠나자마자 적막함이 몰려왔고,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버즈의 ‘가시’만이 유일한 위안이 돼주었다. 하필 조그마한 도시를 여행한지라 세 걸음마다 그와의 추억이 묻어있었다.
당연하게도 마크마놉을 피해 구시가지를 떠나 신시가지의 한 숙소로 옮겨갔다. 은정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와 어떤 교류도 하고 싶지 않았으며, 상실감으로 판단력이 흐려졌던 나는 덜컥 1인실 숙소의 일주일치 비용을 내고 말았다. 은퇴한 나폴레옹 같은 프랑스인과 그의 태국인 부인이 함께 운영하는 호스텔이었다. 당시 유럽에 가 본 적 없던 나는 이곳에 (뭔지도 모르는) 프랑스 감성이 녹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동경도 내가 이곳을 선택한 하나의 이유였다.
이게 프랑스 감성이라면 안 가도 그만이겠다 싶은 숙소 내부였다. 킹사이즈 침대, MDF 합판으로 된 책꽂이 하나, 캐리어를 펼치면 발 디딜 곳도 없는 좁은 1인실이었지만, 자유가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더 컸다.
이 시기의 나의 일정은 대체로 산책-식사-산책-도서관(!)-식사-산책으로 치앙마이에서 가장 할 일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였다.
나흘째되던 날,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여유를 즐기던 나는 잊기 전에 현재 내가 묵는 숙소에 대한 후기 초안을 작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의 위치, 주인의 성격, 건물의 구조, 주변 부대시설 등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메모장에 글을 써 내려갔다. 며칠 뒤, 체크아웃을 하면 올릴 생각이었다.
그날 오후, 프랑스인은 방으로 올라가려던 나를 불러 세웠다. 그는 구글 지도에 아무런 내용 없이 별 세 개 만을 남긴 리뷰를 보여주며 이 리뷰의 주인이 내가 맞냐고 추궁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올라간 모양이었고, 아마 한국어로 된 내 이름을 보고 나라고 짐작한 것 같았다. 내려달라는 그의 말에 난 찌질하게 리뷰를 지울 수밖에 없었고 부부는 새로고침을 통해 리뷰를 지운 것을 똑똑히 확인한 후에야 방으로 올라가는 길을 비켜줬다. 내 머릿속에는 리뷰에 덧붙일 한 줄을 써내려 나간다.
마크마놉으로 더럽혀진 치앙마이에 대한 나의 인식은 꾼깨주스, 타이티라떼, 직화불고기 그 외 잔잔한 일상에서 오는 즐거움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를 보였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모두 둘러봤다고 생각한 방콕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떠나는 날이 가까워졌을 때, 난 벌레 물린데 효능이 있다는 민트 오일을 구매했다. 그 자그마한 물약을 다 쓴 나는 다음 날 하얀색 호랑이 연고를 구입했고, 그다음 날에는 약국에서 벌레 물린데 바르는 연고를 구입해야만 했다. 무언가 팔뚝을 물었는지 가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꽤나 독한 놈에게 당했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인의 숙소를 떠나 방콕으로 가기 전 하루는 공항버스를 타기 가까운 값싼 호스텔에서 묵었다. 철제 침대, 군용 모포, 야외 샤워시설 등 최고의 시설은 아니었으나 친절한 주인의 태도는 모든 걸 상쇄시키기 충분했다.
마지막 날, 나는 은정과 자주 가던 카페, 자주 가던 편의점에 들러 직원들과 눈으로 일방적인 마지막 인사를 마친 뒤 방콕으로 떠났다.
자정을 넘긴 시각, 피곤에 찌들어 바로 택시를 타고 호스텔로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지만 얼마 안 가 깨어났다. 발목 언저리에 아픔을 느낀 것이다. 놀랍게도 잠결에 발목을 긁다가 상처가 생긴 것이었다. 약국에서 산 연고와 호랑이 연고를 발라도 잠깐일 뿐 손은 자연스레 발목으로 향했고, 난 수시로 다시 일어나 연고를 발라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데스크 직원은 아침인사도 하기 전 내 팔을 보고 괜찮냐고 물어왔고, 어젯밤에 생긴 것인지, 침구를 바꿔주길 원하는지 물었다. 괜찮다고 말하니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치앙마이에서 묵었던 프랑스인의 숙소가 고지된 바와는 다르게 1인실이 아니라 배드 버그와 사이좋게 공유하고 있었단 의심이 점차 확실해졌다. 처음 증상이 나타난 날, 그리고 배드 버그의 잠복기를 고려하면 그 숙소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축축한 공기로 가득 차 항상 젖어있었던 이불, 조그마한 창문도 하나 없었던 걸 떠올리자 그곳은 눈으로만 배드 버그를 보지 못했을 뿐, 그들이 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최적의 서식지였고, 거기에 더해 주기적으로 거대 식량이 저절로 걸어 들어오는 곳이었다. 게다가 배드 버그가 가장 활약을 펼친다는 유럽, 그 유럽의 프랑스에서 온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숙소라니! 말 다 했지 싶다.
배드 버그의 습격의 결과는 처참했으며 그들의 완승이었다. 잠복기가 끝나자 팔 안쪽, 허벅지, 얼굴, 목, 손등, 손가락 사이, 발목 등 비교적 연한 살들은 그들이 지나간 자국을 따라서 일렬로, 작게는 손톱 크기부터 크게는 색종이 크기까지 붉게 부어올랐고, 나는 그 부분들을 긁느라 말 그대로 두 손이 모자랐다. 자면서도 걸으면서도 환부를 긁지 않고는 못 견디는 상황이었다.
나의 고통은 그렇다 치더라도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잘못을 따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한시라도 빨리 그 방의 침구와 침대를 불태우도록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따로 고지해놓은 이메일이 없어 구글 리뷰에 객관적으로 이 사실을 알렸다. 위치, 시설, 그리고 배드 버그를 보진 못했지만 정황상 있는 것 같다는 내용, 그리고 내 발 사진을 첨부했다.
프랑스인은 후에 태국에는 배드 버그는커녕 모기도 없으며, 허구한 날 맨날 통화하고 있던데 전자파를 의심해보라는 등 유치한 비방글로 내 글에 답변했으며, 결국 내 사진은 게시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