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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Oct 26. 2020

(13) 태국: 방콕

PRESENTS


체념하고 다시 도심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다시 태국 도심에 발을 붙이자 송별회까지 무사히 마쳤는데 다음날 다시 출근한 직장인이 된 듯 어쩐지 멋쩍다. 선물 같은 하루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일단은 버스터미널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파타야 같은 방콕 근교 바닷가에 가볼까 싶었으나 어쩐지 영 내키지 않아 금세 포기했다. 그 와중에도 팔다리를 벅벅 긁어댔는지 무심코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조용히 두세 칸씩 멀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목적지는 정해졌다.

태국에서만 벌써 세 번째 대학병원이다. 간단히 진료를 본 후, 알약과 연고를 처방받았다. 처방약이라서 그런지 효과가 좋은지 조금은 의욕이 샘솟기 시작했다. 한 번도 안 가본 방콕의 통로/에까마이 지구로 향했다. 말도 안 되게 싸고, 그래서인지 말도 안 되게 작은 아무 옷이나 사서 몸을 구겨 넣은 후, 나머지 옷은 몽땅 세탁을 맡겼다. 배드 버그 놈들에게 실수로라도 베트남까지 수송서비스를 제공할 마음은 없다.

시작부터 잘못된 하루였지만 덕분에 CNN이 선정한 최고의 팟타이도 먹었으며, 처음으로 태국 영화도 봤으니 괜찮다 싶다. 하지만 오늘 밤에도 공항 노숙을 해야 한다는 건 너무한 처사인 듯싶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베트남에 갈 수 있다. 24시간 전 철저한 사전 답사를 완료한 터라 눈 감고도 앞으로 일어날 모든 과정을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다. 여권 검사를 하는 직원은 나를 알아보기는커녕 여전히 ‘안녕하세요~ 사랑해요~’라고 말했고, 난 힘겹게 어제의 나처럼 웃어 보였다. 재빨리 가장 어두운 의자를 선점해 눈을 붙였다. 역시 경험은 최고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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