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의 예고와 다른 내용으로 11편을 써야 할 정도로 최근 DAO 생태계에 큰 이슈가 발생했다. 바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오오키 다오(Ooki DAO)'에 불법 가상자산 파생상품 판매 혐의 등으로 25만 달러(약 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다.
(CFTC는 우리나라 금융감독원처럼 금융 기관의 법 위반 사실을 조사하고 혐의가 있을 경우 미국 검찰에 고소하는 정부 기관이다. 다만 CFTC는 금, 은, 석유 등과 같은 원자재(Commodity) 또는 선물(Futures) 등 파생상품에 대한 관할권만 있다. 주식(Securities)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영역이다.)
CFTC는 마진 트레이딩 제공 업체 bZeroX가 선물 거래 중개회사(FCM)로 등록하지 않고 불법 마진 거래를 지원한 점을 문제로 삼았다. 그리고 오오키 다오가 bZeroX와 똑같은 프로토콜을 사용하고 있으며, 사실상 bZeroX가 오오키 다오를 운영하는 것으로 보고 똑같은 혐의를 적용했다.
CFTC 규제에 따르면, 선물 등 파생상품을 중개하려는 업체는 ▲조정 순 자본 100만 달러 유지 등의 조건을 충족한 후 CFTC에 FCM으로 등록해야만 한다. 또한, 이들은 은행 비밀 보호법(BSA)에 의거해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지게 된다.
그레천 로위(Gretchen Lowe) CFTC 집행국장 직무 대행은 "미국 개인 투자자 대상으로 마진, 레버리지 상품이나 디지털 자산 거래를 제공하는 업체는 모두 법률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며 "이는 전통적인 사업 구조를 갖춘 법인뿐 아니라 DAO에게도 적용된다"라고 강조했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 이번 사안의 중요성이 그다지 커 보이지 않을 수 있다. CFTC는 앞서 2021년 8월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멕스(Bitmex)가 FCM으로 등록하지 않은 채 영업을 했다는 이유로 1억 달러 상당의 과징금을 물렸다. 또한, 연방법원은 2022년 5월 같은 혐의로 아서 헤이즈, 벤자민 델로, 사무엘 리드 총 3명의 비트멕스 공동창업자에게 각각 1000만 달러 상당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런 사안이 있던 만큼, 거래소에만 적용되던 혐의가 DAO에 확대 적용된 것으로 볼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CFTC가 오오키 다오를 고소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누구를 고소했느냐다.
가상자산 리서치 업체 '델피 디지털 랩스'의 법무 자문위원(General Counsel) 가브리엘 샤피르의 트위터에 따르면, CFTC는 오오키 다오 커뮤니티에 '21일 안에 출석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 위험을 질 수 있다'는 내용의 출석 요구서를 게재했다. 또한,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 온라인에서 소송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현재까지 해당 법원은 이를 승인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여기서 시사점은 세 가지다.
첫 번째, DAO가 온라인 기반 익명성 조직인만큼 앞으로는 DAO에 대한 소송 절차가 피고인이 법원에 현장 출석하지 않아도 진행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 법원이 CFTC의 요청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DAO 소송의 향방을 결정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두 번째, 미국 연방 정부가 DAO를 일종의 무한책임회사-정확히는 합명회사-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CFTC는 '오오키 다오'의 거버넌스 투표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코인데스크 US는 "CFTC는 당초 거버넌스 토큰을 보유한 구성원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추적이 어려울 것"이라며 "거버넌스 토큰을 에어드롭받은 사람에게조차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와이오밍 주와 테네시 주 등 주 정부가 DAO를 유한책임회사(LLC)처럼 등록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마련한 일이 무색해지는 결정이다.
유한책임회사는 내부적으로 정관 자치가 보장되는 조합의 실질을 갖추고 외부적으로는 투자액의 범위에서 유한책임을 부담하는 주식회사의 장점을 결합한 제도다. 유한책임회사에서 사원은 간접, 유한책임만 진다. 정관으로 '업무 집행자'를 따로 정하기 때문이다.
출처=법제처 생활법령정보
반면, 무한책임회사(합명회사)에서는 상법 제212조에 따라 회사의 재산으로 회사의 채무를 완제할 수 없는 때 각 사원이 연대해 변제할 책임이 있다. 무한 연대책임을 지는 것이다.
'오오키 다오' 구성원이 어디까지 책임을 질지 여부는 미국 사법부가 판단해야 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만약 미국 사법부도 DAO를 무한책임회사처럼 간주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우리나라 당국도 해당 판례를 참고할 수 있어서다.
이미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2016년 '법무법인 구성원 변호사에게 합명회사 사원의 무한 연대책임 준용 사건'(헌재 2016. 11. 24. 2014헌바203·463,2015헌바305·375,2016헌바62(병합))에서 "법무법인의 재산으로 법무법인의 채무를 완제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2차적, 보충적으로 구성원 변호사에게 연대해 변제할 책임을 부담시킨 것"이라며 무한 연대책임이 재산권 침해를 최소화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세 번째, SEC뿐 아니라 CFTC까지 가상자산 업계에 칼을 빼들었다는 점이다. SEC는 가상자산을 증권 관련 규제로 규제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XRP(리플) 발행사 '리플'을 미등록 증권 발행 혐의로 고소한 데 이어 바이낸스의 BNB가 미등록 증권인지 여부를 조사하는 데 나섰다. 그런데 이제 CFTC까지 가상자산 업체가 미등록 파생상품을 판매한다는 이유로 문제 삼으려는 것이다.
이에 한 트위터 이용자가 "가상자산 전담 변호사들이 이제야 CFTC가 SEC보다 이 업계에 더 친화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라는 멘션을 남기기도 했다.
가상자산 업계에선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위에서 언급한 가브리엘 샤피르도 트위터를 통해 "DAO는 이용자에게 레버리지 상품을 제공하는 당사자가 아니"라며 "CFTC의 이번 행동을 고려하면 메이커 다오의 스마트 계약인 '담보화된 부채 포지션(CDP)'도 개인 투자자 대상 레버리지 상품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CFTC의 의견에 반박하기 위해) 사람 참여 없이 인공지능(AI)으로만 돌아가는 거버넌스 기반 DAO를 만들어야겠다"라고 조롱했다.
블록체인 투자 업체 '시니하인벤처스'의 파트너 아담 코크란(Adam Cochran)도 트위터를 통해 "CFTC는 DAO 거버넌스와 무관하게 프로토콜 자체만 보고 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좋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안은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와 DAO 생태계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앞으로 DAO를 준비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이 온라인 소송에 대한 승인을 해줄지, DAO 구성원들이 어디까지 책임을 지게 될지 등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