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로 소비자가 지급한 가격에 비해 제품 성능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큰 효용을 주는지를 나타낸다)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공짜’는 없는 세상, 이왕이면 돈이든, 시간이든, 노력이든 내가 들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좋겠죠. 그래서일까요, 글쓰기에도 가성비를 따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엄마들과 함께 한 글쓰기 수업에서도, 종종 ‘작가님은 A4 한 장 정도의 분량을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라는 질문을 하시기도 합니다.
조금 실망스러운 말씀을 드리자면, 글쓰기만큼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시간 대비, 노력 대비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는 참 드뭅니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해도 그 글이 딱히 뭔가를 ‘짠!’ 가져다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자주 ‘글을 써서 뭐하나’의 굴레에 빠지곤 합니다. 나 혼자 땅 파고 들어가기도 힘든데, 주변에서도 자꾸 한 마디씩 보태니 또 환장할 노릇이 됩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편이 되어줘도 모자랄 남편도, 어렵사리 마음을 터놓은 친구도,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시부모님도 다들 한 마디씩 하는 거죠.
“글은 써서 뭐하니? 그 시간에 그냥 애나 잘 키워”
상황이 이러니 글쓰기를 하는 엄마들 중에는 현실 속 지인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온라인 속에서 같은 열망을 품고 있는 동지를 만나서 글쓰기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거 뭐,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참 기막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쩌면 맞는 일입니다! 글쓰기는 엄마들의 독립운동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들의 독립운동에 힘을 실어드리자면, 글쓰기는 ‘가성비’는 떨어질지 몰라도 ‘가심비’는 소위 말하는 끝판왕입니다. 시간도 노력도 열정도 많이 드는 데다 그만큼 물질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없지만, 내 마음만큼은 참으로 풍요로워지는 것, 그게 바로 글쓰기가 갖고 있는 힘입니다. 안 해 본 사람은 그걸 왜 하나 대체 이해할 수 없지만, 해 본 사람은 적극 권하게 되는 글쓰기의 마법인 거죠.
그럼 이왕 이렇게 힘들게 시작한 글쓰기. 가성비를 조금 높여보자고요! 그 최고의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메모’입니다. 글쓰기와 메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베프고, 메모는 글쓰기의 씨앗이 되어줍니다. 특히 나를 위해 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엄마들에게 메모는 짧은 순간에 하는 메모는 금세 잊히는 생각을 잡아줄 도구가 되죠.
요리할 때를 생각해 보자고요. 냉장고 속에 재료가 다 준비되어 있다면 막상 요리를 시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냉장고에 재료가 없다?! 이것도 사야 하고 저것도 사야 하고 장 볼 생각을 하다가 지레 지쳐서 배달음식을 시키고 마는 경우가 있진 않았나요? 메모는 냉장고를 채우는 재료와 같습니다. 글을 써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글감을 찾으려고 하면, 책상 앞에 앉아서 빈 백지를 보는 일이 무서워지고, 시간은 흐르는데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글감은 글을 쓰겠다고 앉아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틈틈이 미리 모아두는 것입니다. 부디, 냉장고는 안 채워도 여러분의 글감 냉장고는 꽉꽉 채워두시길 바랍니다.
가끔은 메모가 그다지 효과적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만납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메모는 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메모는 단순히 글감입니다. 냉장고 속의 음식 재료처럼 말이죠. 때로는 그 재료 중에는 밀키트처럼 그냥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완성된 것들도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다른 것을 더해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기도 하죠.
메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메모는, 명확한 주제를 담고 있어서 이미 그것만으로 하나의 글로 완성될 수 있지만 대부분은 단편적인 생각들이기 때문에 다른 메모라는 재료와 결합했을 때에 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메모를 해놓고 한 번도 들춰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내 메모장을 들여다보는 습관도 필요합니다. 솜씨 좋은 주부가 냉장고 안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를 파악해서 그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 수 있는지 그려내는 것처럼, 자주 메모장을 살피다 보면 메모장 안의 짧은 글이 다른 글과 연결되는 지점을 만나게 됩니다. 나중에는 꼭 메모장을 살피지 않아도, 내 안의 생각과 메모가 딱! 연결되는 ‘유레카’를 만나는 영감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죠.
주부의 일이라는 게 슬프게도 대부분은 단순노동입니다. ‘글을 쓰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면,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갤 때, 청소기를 밀 때 글감이 떠오르는 순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놓치지 말고 핸드폰을 들어 적어두세요. 나만의 작은 수첩을 만들어 늘 가까이 두시는 것도 좋습니다. 별 거 없는 메모 같아 보여도 나중에 다른 재료와 결합하면 그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소재로 쓰일 날이 있습니다. 냉장고에 쟁여두는 마음으로, 나만의 글감을 메모해두시길 바랍니다. 꽉 찬 냉장고를 볼 때 보다 더 마음이 든든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