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은 분명히 똑같은 사람인데, 입장에 따라서 나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많이 해보셨을 거예요. 저는 운전자일 때의 ‘나’와 보행자일 때의 ‘나’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운전하고 있을 때는 불법 횡단을 하는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주차장에서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어 가슴 철렁하는 순간이 생기기도 하죠. 그럴 때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나 싶어 집니다.
그런데 보행자가 되면 또 생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사람이 먼저’라는데 웬 차들이 다 규정속도며 신호를 지키지도 않는지, 도로 위가 불법 천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말입니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변하는 사람의 마음은 얼핏 간사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사실 작가의 입장이 돼서 책을 읽지 않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100퍼센트 독자의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는데, 그렇다면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궁금한 것은 ‘내가 이 책을 읽고 뭘 얻을 수 있을까?’입니다. 즉 책의 작가가 나에게 무엇이든 주길 바라는 거죠. 그게 지식이든 정보든, 웃음과 공감이든, 무엇이 됐든 간에 말입니다.
지금은 명확하게 ‘책’을 예시로 들었지만, 다른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책처럼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요즘 세상은 읽을거리가 넘쳐나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면 이 역시, 무언가를 줘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엄마들이 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작가로서 독자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줘’라는 마음만 갖고 있다는 겁니다.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거든요.
똑같은 사람이 독자가 되고, 작가가 됐을 때도 그렇습니다. 문제는 독자는 아무 이야기나 듣고 싶은 건 아니라는 거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길을 가다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붙잡으면 아마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겁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돈을 내고 정신과에 찾아가서라도 자기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고로 정신과 의사는 의자에 앉아만 있을 수 있으면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할 정도랍니다.
말도 재미가 있어야 상대방이 잘 들어주는 것처럼 글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선은 빨리 본론이 나오는 것이 중요한데요. 내가 작가의 입장에서 글을 쓸 때는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특히 엄마들의 경우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쓰는데, 원래 사랑하고 애정이 있는 것에 대해 글을 쓸 때면 사소한 것까지 아주 커다랗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늦된 아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자란다’는 글을 쓴다고 봅시다. 우선, 가장 일반적인 글의 형태처럼 ‘늦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죠. 그런데 엄마인 이 작가는 나와 내 아이의 이야기이다 보니까 지나친 감정이입을 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백일이 지났는데도 고개를 가누지 못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때마다 어떤 성장의 기준과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자세하게 하는 겁니다. 3개월, 6개월, 12개월, 18개월 때. 이런 식으로 말이죠.
독자의 입장이 되어서 그 글을 읽는다고 가정해볼까요. 아마 많은 독자들은 ‘그렇군요. 당신의 아이가 좀 늦되는군요. 그런데 본론은 언제 나오는 거죠?’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비슷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반복될수록 ‘아,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요?’라며 지루해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명확한 사실을 말하자면, 아마 독자는 당신의 글을 읽는 일을 포기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애정으로 가득 찬 글일수록 독자 입장에서는 피드백을 주기도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피드백을 줄 때, 가장 많이 망설이는 부분이 바로 아이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글인데요. 이 자리를 빌어서 확실하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미안하다. 관심 없다’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대상에 대해 쓸수록 쓸 데 없이 너무 길고 자세한 것은 아닌지, 더욱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글을 쓰는 과정 중에서는 마음 편하게 써나가면 됩니다. 다만 글을 공개할 때, 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란다면 퇴고의 과정에서 내가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일수록 먼저 줄여나가는 것. 독자를 배려한 글쓰기의 가장 기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