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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아서 병난 여자 Oct 24. 2021

사랑은 하되 구질구질해지지 맙시다

<사랑은 하되 구질구질해지지 맙시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녀석은 어째 등호는 없고 늘 부등호만 있나 모르겠습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사랑을 베푸는 상황이 있고, 저는 사랑에 있어서는 늘 약자였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나타나는 특징이 구질구질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꾸 사랑 앞에서 구질구질해졌어요. 이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너무 이해받고 싶어서, 또 나의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많은 이야기를 했던 거죠. 때로는 나를 오해할까 겁이 나서 별 필요도 없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끝은 언제나 헤어짐이었습니다. 내가 구질구질해지면 상대는 결국 질려버리곤 했던 거죠. 사랑에도 밀당이 필요하다는 선배들의 말을 역시 들어야 했습니다. 

  혹시 글쓰기와 사랑에 빠지셨나요? 지금 여기까지 오신 분들은 글쓰기와 사랑에 빠지셨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것도 사랑이라고, 글을 쓰다 보면 구질구질해질 때가 있습니다. 글쓰기에서 구질구질해지면 구구절절 말이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구질구질한 사랑에 상대방이 떠나듯 구구절절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는 글은 독자를 질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니 글쓰기를 사랑할 때도 적절한 밀당이 필요합니다.

  글을 쓸 때 자꾸 구구절절해지는 이유는 첫 번째, 무엇보다 그 내용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있던 사실 그대로를 쓰는데 그게 왜 구구절절인지 모르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초등학생들의 일기를 생각해볼까요? ‘일기’가 하루를 기록하는 거라고 믿는 초등학생들의 일기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가 고정 문장 아니었나요? 쉬는 날이면 그 고정 문장이 살짝 바뀝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미숙이네 놀러 갔다’로 말입니다.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났고, 밥을 먹었는데 어쩌겠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초등학생이 아니고, 우리가 목표로 하는 글쓰기도 일기가 아닙니다. 하루를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중 내가 글로 기록하고 싶은 부분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시간의 흐름의 어딘가를 엿가락 치듯 탕탕 잘라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드라마도 그렇잖아요. 주인공이 회사에 갔습니다. 회사에 가서 근무하는  시간 내내를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떤 시청자도 계속해서 스포츠 중계 같은 그런 드라마를 볼 리가 없겠죠.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모든 장면에는 의미가 있고, 회사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질 때만 그 순간을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시간을 점프시켜서 퇴근 시간 이후의 일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그런 편집이 글쓰기에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글을 쓰면서 구구절절해지는 또 다른 이유는 독자에게 잘 보이고 싶고, 오해받을까 봐 겁나서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혹시나 나를 나쁜 사람으로 보면 어쩌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글을 쓰면 그런 마음이 더욱 강렬해지는 것 같습니다. 보여줄 수 있는 건 글 한 편인데, 그 글에 나라는 사람 전부를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도 그 글 안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혹시나 하는 변명을 쓰다 보면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겁니다. 

  엄마들이 쓰는 글에는 아무래도 아이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서 아이를 때린 일에 대해서 쓴다고 할게요. 주제는 ‘아이를 때려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해보겠습니다. 

  뭔가 어떤 사건이 있었겠죠. 하루는 너무 지치고 힘들었는데, 아이가 밥상을 앞에 두고 온갖 짜증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좋게 말로 타일렀는데, 아니 이 녀석이 엄마가 힘들게 차린 밥상을 엎어 버리네요? 그 순간 참지 못하고 손이 나가서 아이의 등짝을 찰싹 때렸습니다. 어라? 미안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좀 시원합니다. 결국 ‘찰싹’ 한 번이었으면 될 일에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의 줄이 끊어지면서 ‘찰싹, 찰싹, 찰싹’ 아이는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시죠? 밤에는 반성과 자책과 후회와 미안함으로 얼룩지는 엄마의 마음. 

  이 일을 글로 쓰는데, 쓰긴 써야겠는데 아무래도 자꾸 걱정이 됩니다. ‘나를 이렇게 매일 습관적으로 아이를 때리는 엄마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는 겨우 한 번이었는데? 사실은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 괜찮은 엄만데?’라는 억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죠. 그래서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이를 때린 사건과 그로 인한 내 마음이었는데, 어째 글에서는 자꾸 내가 예전에 잘했던 일들에 대한 에피소드와 ‘나는 원래 그런 엄마가 아니다’라는 변명의 문장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결국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알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거죠. 

  공개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일들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십 수년을 같이 살아도 모르겠는 게 사람인데, 어떻게 글 몇 편으로 사람을 잘 알 수 있겠어요? 독자를 배려하는 글쓰기는 독자를 의식하느라 내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글쓰기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글쓰기에 용기가 필요한 게 바로 이런 이유겠죠. 저도 그런 욕심이 많았습니다만 글을 쓰면서 차츰 그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할 여유까지 생겼고, 글쓰기 수업을 듣는 엄마들에게도 말합니다. 

  “독자는 나를 오해할 권리가 있다” 

  이 글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나를 오해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내려놓으세요. 그 걱정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구질구질한 글보다는 명확한 메시지가 담긴 깔끔한 글이 훨씬 더 독자의 마음에 다가갈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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