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아서 병난 여자 Oct 24. 2021

글쓰기에도 강약이 필요해

  저는 영어에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영어를 잘하고 싶지만 공부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가질 수 없는 너’였다고나 할까요? 진득하게 하나의 공부를 하지 못하고 참 다양한 영어 공부를 시도했는데,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선생님이 한 명 있어서 잠시나마 재밌게 영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선생님은 특히 영어를 말할 때의 리듬을 굉장히 강조하는데, 단어에는 기능어와 의미어가 있다는 겁니다. 즉 우리말의 조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기능어고, 중요한 것은 의미어라는 거죠. 따라서 발음할 때 의미어는 힘을 주어 정확하게, 기능어는 의미어를 뱉고 남은 힘으로 소리를 먹는 느낌으로 말하는 겁니다. 마치 공을 세게 내리치면 남은 힘을 받아서 한 번 더 튕겨져 오르는 것처럼 말이죠.


  어라? 이렇게 발음하는 연습을 하니까, 그렇게도 후지던 제 발음이 꽤 유창하게 들리는 겁니다. 그 느낌이 좋아서 오랫동안 이 방법으로 영어를 연습했습니다. 물론 그 ‘오랫동안’도 그다지 길게 가지는 못했습니다만.


  영어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영어에 강약 조절이 필요한 것처럼, 글쓰기에도 강약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섭니다. 강약 조절은 다른 말로 하면 리듬이고, 잘 쓴 글에는 부드러운 곡선처럼 리듬감이 느껴지더라고요.   


  흔히 글쓰기를 이야기할 때 ‘그림 그리듯이’ 라는 비유를 많이 하곤 하는데, 만약 한 편의 글을 그림이라고 한다면 그 그림은 어떤 종류에 가까울까요? 저는 글은 캐리커처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의 모든 부분을 마치 실제같이 하나하나 자세하게 그린 세밀화도 아니고, 모든 부분을 비슷하게 대강 그린 스케치와도 다릅니다. 하나의 특징을 부각해서 크게, 강조해서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그 특징을 받쳐 주는 캐리커처가 딱 글과 닮았습니다.


  이것도 물론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겁니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이야기 모두 ‘기승전결’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 우리 다 알고 있잖아요. 실제 글을 쓸 때 적용을 하지 못해서 스스로도 답답할 뿐이죠.


  기승전결의 원칙에 입각해 강약 조절을 하자면 기와 승은, 전을 향하여 곡선이 올라가는 과정입니다. 약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고조되어 가면서 전에서 확실하게 빵! 하고 강하게 터지는 뭔가가 있어야 되는 거죠. 이론적으로는 쉽고 당연한데 이게 사실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글에서 보면 강약이 없이 비슷한 강도와 비슷한 길이와 비슷한 문체의 단락들이 그저 나열되어 있는 게 전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똑같은 음이 계속 반복되는 졸린 음악처럼, 같은 풍경이 계속 이어지는 지루한 길처럼 말이죠. 당연히 음악에는 리듬감이 있고, 길도 이왕이면 구불구불하고 오르막도 있고 개울물도 있는 길이 걷기에 더 재미있잖아요. 글도 똑같습니다. 강약 조절을 하면서 리듬감을 입혀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어디를 강조하느냐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물론 대부분은 자기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를 강조하면 됩니다. 글 속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의 경우에는 갈등이 커지는 순간이, 강조할 부분이 되겠지요. 글쓰기 강의를 할 때 엄마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어디를 강조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드문 경우에 조금 어긋나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먼저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주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부분을 꼭 짚어 보시고요, 강조할 부분은 명확하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도 글에서 리듬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강조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같은 세기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아까 영어 발음 얘기 기억나시죠? 의미어는 세게, 기능어는 약하게. 그것처럼 글에 있어서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는 조금 가볍게 툭 건드려주고 나아가자는 겁니다. ‘전’까지 올라가는 길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면 독자는 이미 그 자리에서 지쳐버리게 되거든요. 말을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유독 서두가 긴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 그래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시간이 지루해 겠습니다. 물론 앞에서 티는 못 내지만 말은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글은, 그저 덮어버리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니, 쓸 데 없는 긴 이야기로 읽는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지 말자고요.


  그럼 강조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부분에 조금 더 공을 기울인다는 느낌으로 하면 됩니다. 공 들여서 묘사해서 독자를 그 순간으로 끌어들이고요, 문체도 그때만큼은 조금 더 속도감 있게 해 주거나 오히려 속도를 늦추는 식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말할 때와 똑같습니다. 화가 나거나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주장할 때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빨라지는 것처럼 글에서도 그런 느낌을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음악시간에 장구 장단 배운 거 기억나시죠? 강약약 중강 약약. 이런 느낌으로 글쓰기에도 장단을 찾아보자고요. 글도 훨씬 재밌어지고, 글쓰기 자체도 흥겨워질 겁니다.  


이전 10화 글쓰기는 친절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