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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아서 병난 여자 Oct 24. 2021

글은 써서 뭐하나 싶어질 때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어느 날 말했습니다. 

  “엄마, 저는 공부가 잘하고 싶은데, 공부하기가 너무 싫어요” 

  그 말에 질세라 대꾸했죠. 

  “어머, 채민아! 엄마랑 똑같다! 엄마는 요리를 잘하고 싶은데, 요리하기가 너무 싫어!” 

 

 사실은 그동안은 부끄러웠습니다. 주부이자 엄마로서 음식 하는 것도 싫고, 청소하는 것도 싫고, 빨래하는 것도 싫어하는 제가 마치 직무유기를 하는 책임감 없는 사람, 모성애도 없는 엄마처럼 느껴졌거든요. 어디 가서 자신 있게 말도 못 하겠고, 살림 잘하는 사람들을 속으로 질투하고, 애써 따라 하다가 스스로를 자학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많이 내려놓았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살림도 일종의 재능이거든요. 꼭 필요해서 하는 일이지만 싫어할 수도, 잘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그런 나’를 인정해주는 거죠. 다만, 현재는 그게 나의 의무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정도는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살림을 너무 진저리 치게 싫어하다 보니까, 스스로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지루한 반복과 쓸모없음. 저는 살림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음식만 해도 그렇습니다. 방학이나 주말이면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챙겨줘야 합니다.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사고, 음식을 하고, 또 나중에 각종 뒤처리까지. 그런데 그게 끝난 게 아닙니다. 다음 끼니는 또 돌아오거든요. 그럼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거죠. 


  청소도 빨래도 그렇습니다. 오늘 빨래를 해도, 빨랫감은 오늘 또 생기고, 오늘 청소를 해도, 집안에는 금세 먼지가 쌓입니다. 아이들이 어질러놓는 거야, 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해도 해도 끝날 거 같지 않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보니 살림은 ‘해도 쓸 데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하기가 싫어졌습니다.  


  막상 살림의 속성을 생각하다 보니 어라? 이상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녀석입니다? 글쓰기랑 살림이 똑같더란 말입니다. 해도 해도 특별히 나아지는 거 같지도 않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몇 시간씩 공들여 썼는데 읽는 사람은 성의 없이 후딱 읽어버리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살림이고, 글쓰기고 참 쓸 데 없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해서 뭐하나 싶어 지죠.


  아무리 맛이 없고, 대충 만든 음식이라고 해도 이 음식을 먹고 제 아이들은 잘 자랐습니다. 가끔 신경이라도 쓰면 엄마 음식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워 흐뭇하게 만들어줄 때도 있죠. 청소는 제 기준에서 가장 아랫 순위에 놓여있지만 그래도 때 맞춰해 줬기에 아이들은 무탈하게 자랐고, 지겹다, 지겹다 돌림노래를 부르면서도 빨래는 해줬으니 학교에 깔끔하게 옷을 입고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도 쓸 데 없는 일이라고 여긴 살림이, 내 아이를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걸 알고 있기에, 그 지겨운 반복 속에서도, 어느 날은 엉엉 울면서도 끝끝내 하고야 말았겠죠. 


  살림으로 가족들을 살렸다면, 이제는 글쓰기로 엄마인 당신을 살려야 하는 시간입니다. 이제껏 이렇게 열심히 살림을 해왔다면 글쓰기도 할 수 있습니다. 해도 티 안 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건 매한가지거든요. 굳이 더 따지고 들면 살림보다는 글쓰기는 조금만 노력하면 금전적인 보담으로라도 돌아올 수 있으니 더 나은 면도 있고요. 무엇보다 살림이 아이들을 키웠듯이 글쓰기가 여러분의 마음을 키우고 살찌울 겁니다. 해도 티는 안 나지만 안 하면 티가 확 나는 살림처럼, 글쓰기를 며칠 빠트리면 마음이 허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그런 순간도 올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글쓰기고 살림이고 결코 무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면 이렇게 비슷한 일인데, 저는 왜 살림은 미워하고 글쓰기는 그리도 소중하게 생각했을까요? 


  미스터 션샤인에서 희성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는 희성은, 극 중에서 아무것도 할 것 같지 않던 한량이었던 희성은 신문을 발간합니다. 그 역시 무용한 글쓰기가 무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까닭이겠죠. 


  무용하나, 결코 무용하지 않은 글쓰기. 이제부터라도 그 오묘한 세계에 발을 들여보시면 어떨까요? 대신 저는, 무용하나 결코 무용하지 않은 살림에 조금 더 애정을 쏟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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