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나만의 시간이다. 세상이 고요히 숨을 고르는 그 순간, 나는 카모마일 티를 손에 들고 화면을 켠다. 허브의 따뜻한 향기가 천천히 공간을 감싸고, 예술 영화가 느릿하게 시작된다. 상업 영화가 사건을 빠르게 좇아간다면, 예술 영화는 인물의 내면을 천천히 따라간다. 길게 이어지는 여백과 멈춘 듯한 장면 속에서, 나는 나를 채우는 시간을 맞이한다.
어느 날, 영화 속 인물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긴 침묵에 빠진 장면을 보았다. 시간은 마치 흐름을 잃은 듯 멈춰 있었고, 그 인물의 머뭇거림은 내 안에도 깊숙이 스며들었다. 나 역시 삶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갈림길에서의 망설임, 끝내 묻지 못했던 질문들이 조용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질문들을 일깨우며 나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왜 우리는 선택 앞에서 늘 두려워할까? 삶은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불안이 자리한다. 그 불안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때야말로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나를 그 불안의 한가운데로 이끌었다. 인물들의 침묵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잊고 있던 감정들이 고요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로를 채운다는 것은 완벽한 답을 얻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새롭게 이해하는 끝없는 탐구다. 영화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질문을 따라 나를 다시 발견했다. 영화 속 인물들의 고민은 내 고민과 맞닿아 있었고, 느리게 흘러가는 장면들은 내 감정을 일깨웠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놓지 않고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다. 우리는 완벽한 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그 답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변화시키는 시간이다. 새벽은 그런 나를 위한 시간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침묵 속에서 오랫동안 외면했던 내 생각과 감정을 다시금 마주했다. 그 시간들이 쌓이며 나는 조금씩 더 깊은 나를 만나게 된다.
삶의 진정한 기쁨은 완벽한 답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를 채워가는 시간에 있다. 오늘도 나는 새벽의 고요 속에서 또 한 편의 예술 영화를 본다. 그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더 깊어진 나를 만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새벽은 내 안의 우주를 탐험할 수 있는 고요한 항해의 시간이 된다.
신세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