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감정이 남기는 것들
사랑은 한때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뜨거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온도는 점점 내려가고, 결국 미지근한 상태로 멈춘다. 가슴을 뛰게 하던 감정은 어느 순간 차가운 물처럼 고요해진다. 사랑에는 온도뿐만 아니라 속도도 있다. 앞만 보고 달리던 감정이, 문득 급브레이크를 밟고 멈추는 순간. 그때 우리는 사랑의 끝과 마주한다.
그립고, 궁금하고, 생각나던 사람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 사랑은 멈춘다. 이제 그 사람의 소식도, 근황도 나를 흔들지 않는다.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내 안의 사랑은 완전히 정지한다.
분노나 아쉬움이 남아 있다면, 어쩌면 그 사람은 아직 내 마음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감정조차 남아 있지 않을 때, 그 사랑은 정말로 끝난 것이다. 사랑의 끝은 잔인할 정도로 조용하다. 애정이 사라진 자리는 차갑지만 깔끔하다.
싸움은 사랑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다툼이 남아 있는 연인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식어버린 사람은 싸울 이유조차 없다. 차갑게 식어버린 감정은 다툼조차 남기지 않는다. 이제는 그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걸리지 않고,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게 된다. 사랑이 식으면, 그 자리는 단지 텅 비어 있을 뿐이다.
사랑이 완전히 식은 자리는 낯설다. 텅 비어 있는 공간이 허전함을 남길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설 여백이 된다. 우리는 그 빈자리 속에서 조금씩 가벼워지고, 마침내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차가워진 사랑은 끝이 아니라 변화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는 새로운 온도로 채워질 것이다. 그 온도가 무엇일지, 이제 내가 만들어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