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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06. 2019

집의 가치를 생각하다

집이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편과 퇴직 후를 얘기한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퇴직에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애들의 교육 문제에서도, 직장이라는 틀에서도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여유로움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어쩌면 퇴직 후가 더 힘들어질 수 있으니 긴축재정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을 했으니 말이다.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지금 우리 집의 생활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애들 교육비인데 퇴직할 때쯤이면 우리 애들은 졸업을 할 것이고 생활비는 대폭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왜 긴축재정을 해야 하지? 나는 지금처럼만 소비해도 우리는 충분히 여유롭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우리 집 얘기를 꺼내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가장 많은 돈을 써야 할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집이 될 거라고.


 우리 집은 아버님께 물려받은 한옥집이다. 아버님은 시할아버지께 물려받은 것이니 대를 이어 물려받은 집이 된다. 아버님께서 살아 계신 동안에 집 관리는 아버님이 맡아하셨다. 그랬기에 집을 유지하고 관리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관리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거기에다 돈으로 집을 관리하신 아버님과 달리 지금 우리는 몸으로 집을 관리하고 있다. 지금이야 우리가 젊기 때문에 정원 가꾸는 일이나 집수리 등을 스스로 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 아버님처럼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할지 모른다. 그러려면 돈은 필수 조건이 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생활비의 대부분을 집 유지 비용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은 집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짐이 되어 버린다.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띵해졌다. 집이 생산의 도구가 되지는 못할망정 소비의 주체가 되다니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나는 집에 욕심이 없다. 집은 가족이 모여 편하게 쉬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 그런 집이 우리의 에너지와 돈을 소비하다니 이런 낭패가 없다. 그동안 남편의 연금이면 우리의 생활은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더욱이 몇 푼 안 되는 돈이긴 하지만 나에겐 학원 월세도 있으니 노후 대비에는 문제가 없으리라 여겼다. 힘이 빠졌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집을 생산의 도구로 만들어야 한다. 남편이 이 집을 떠날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으니 이곳에 머물면서 집을 생산 도구로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퇴직하고 이곳에 한옥 카페를 만들기로 했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남편은 디저트 만드는 걸 배우고 나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60은 젊은 나이다. 60이 되었다 하여 못할 일이 무엇인가. 새로운 일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지금의 일이 퇴사를 생각할 만큼 힘든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집이 짐에서 벗어나니 그 모습도 달라 보였다.


 '이봐, 집! 지금 내가 널 위해 놀고 싶고 쉬고 싶은 것도 참으며 일하는 거 보이지?

지금은 내가 널 위해 일하지만 퇴직 후는 네가 날 책임져야 해. 너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주란 말이야'


 이제 나의 집은 나의 노후를 책임지는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었다. 한때의 골칫덩이가 효자가 되는 순간이다.

노후를 책임지는 집의 가치는 쉼과 경제력을 동시에 제공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집은 이제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앞으로 잘 관리해서 자기의 임무를 다하도록 만들어야겠다.


 다시 말하지만 집은 결코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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