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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즈음에

마지막 기세를 부리는 더위속에서

by 강석효

달력은 분명 처서라고 말하는데, 더위는 억지가 있어 마지막 기세를 부린다.

예배당 문을 여는 손등에 땀이 먼저 고이고, 만나는 얼굴마다 더위와의 싸움에서 고군분투 중임을 느끼게 된다.


여름 사역 날짜들을 마음속 달력에서 지웠건만,

손에 남은 모래처럼 분주함의 바스락거림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집에 돌아오면 쌓여있는 빨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냉장고에서는 시원한 물과 음료가 “한 컵 더” 하고 속삭이고 있는 시간이다.

이럴 때 주님은 큰 소리보다 작은 숨결로 오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높이 부를 힘이 없어도 괜찮다고, 낮게 속삭이는 기도 한 줄이면 충분하다고,

더위 속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를 손으로 감싸 주신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 (사 42:3) 하였다.

그 약속은 오늘 우리의 가느다란 용기를 끝까지 지켜 주시겠다는 다짐 같아 고맙기만 하다.

속도를 한 칸만 낮춰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아침에 시편 한 줄을 소리 내어 읽고,

감사 세 가지를 작은 메모지에 적어 냉장고 문에 붙여 두면 어떨까?.

주일을 다음 일정의 출발선이 아니라,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는 귀가길로 받아들이면 어깨가 다소 가벼워지지 않을까?.


교회에서는 냉수 한 컵을 더 건네고,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마음에 떠오르는 이름 에게

“수고 많으셨어요, 당신 덕에 여름을 버팁니다” 하고 짧은 안부를 보내 보는 것도 좋겠다.

희망은 거창한 구호보다 이런 작은 친절에서 싹이 트곤 하니까.


햇볕이 너무 뜨거울 것만 같은 교회 마당은 곧 바람의 방향을 바꿀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 마음은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자”(갈 6:9)고 약속하면 좋겠다.

예배 뒤에 남은 떡 한 조각을 반으로 나누듯, 내 힘도 반 접어 이웃과 나누면 이상하게 지치지 않는다.

국수 한 그릇이 둘의 저녁을 채우듯, 짧은 기도 한 모금이 하루의 끝을 다독여준다.


처서 즈음의 바람이 등줄기의 열기를 식혀 주듯,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을 차분히 식혀 주시길 빌어본다.

피곤은 온유가 되고, 낙심은 담대함으로, 막막함은 내일을 향한 미소로 바뀌기를.

우리 교회가 땀 냄새가 기도의 향기로 변하는 집, 함께 버티는 일이 곧 소망이 되는 집이 되기를.

오늘 밤엔 시원한 물 한 잔 옆에 성경을 펼쳐 놓고,

“주님, 오늘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일도 한 발 더 가게 하소서.”


그렇게 다정하게, 천천히 기도하면서 걸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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