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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하는 남자들

주일 예배후 주방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

by 강석효

주일 예배가 끝나면 선한이웃교회에는 밥 냄새가 은혜처럼 퍼진다. 초등학생의 재잘거림부터 팔순 권사님의 웃음 끝 주름까지, 한 상에 둘러앉은 얼굴들이 서로의 그릇이 되어 준다. 갓 지은 밥의 수증기와 김 모락모락 나는 국, 누군가 집에서 정성들여 가져온 반찬들이 제 몫을 다하는 그 시간, 나는 종종 생각한다. 천국이 있다면 아마 이런 풍경일 거라고. 누군가는 더 먹으라며 젓가락을 내밀고, 누군가는 “먼저 드세요” 하며 그릇을 밀어준다. 배가 부르면 마음도 넉넉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진짜 잔치는 그 다음에 시작된다. 남선교회의 형님들이 소매를 걷는다. 허리춤에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툭’ 소리 나게 끼우면 부엌은 순식간에 작은 공장처럼 분주해진다. 한 분은 남아 있는 밥풀을 조심스레 긁어내고, 한 분은 거품을 내어 기본 설거지를 시작한다. 식기세척기가 ‘웅’ 하고 낮게 찬송하듯 울릴 때면, 다른 분들이 그 앞에서 대기한다. 금세 문이 열리고 뜨거운 김이 훅 뿜어 나오면, 얼굴 가득 김서림이 생기고,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수건을 움켜쥔다. “뜨거우니 조심.” 말끝이 짧지만 마음은 길다. 수건이 그릇의 물기를 훑어 갈 때마다 접시는 마치 새로 온 손님처럼 단정해진다. 닦인 그릇은 건조기로, 건조기에서 나온 그릇은 제자리로, 손에서 손으로 옮겨 가는 동선이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다.


그 사이에 작은 농담이 오가고, 수건 한 장이 물에 젖으면 아무 말 없이 다른 이가 마른 수건을 건넨다. 누구는 영웅이 되지 않고, 모두가 조수이기를 자청한다. 뽀드득 소리와 그릇이 부딪히는 맑은 울림이 부엌의 종소리처럼 들린다. 이들은 박수 받을 장면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다음 주에도 교인들이 안심하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오늘의 자취를 말끔히 지운다. 싱크대 가장자리까지 손등으로 한 번 더 훑고 나서야 비로소 장갑을 벗는다. 그제야 알았다. 설교는 강단에서만 울려 퍼지는 게 아니라, 이들의 등허리에서, 땀 맺힌 이마에서, 조용히 배워지는 것이라는 걸.

주님이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오셨다”고 하신 말을, 이들은 굳이 인용하지 않고도 살아낸다. 누가 보든 말든, 물이 튀든 말든, 즐겁게. 그들의 기쁨은 떠들썩하지 않지만 오래 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손끝에 남은 주방세제의 은근한 향이 한나절 내내 따라다닌다. 예배가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고, 식탁이 사랑으로 우리를 모았다면, 설거지는 감사로 우리를 마무리해 준 셈이다.


이런 남자들이 있을까? 있다. 바로 여기, 선한이웃교회에. 그리고 다음 주에도 또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맛있게 먹고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아무 티도 내지 않는 기쁨으로. 그렇게 우리의 주일은 한 겹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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