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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저녁에는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길줄 아는 마음, 가난한 마음

by 강석효

수요일 해가 골목 끝으로 내려앉으면 교회 주방이 먼저 깨어난다.

누군가는 “저녁을 거르고 올까 봐” 쌀을 씻고, 국을 올리고, 반찬그릇을 가지런히 놓습니다.

일터와 집에서 허겁지겁 달려온 성도들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나눠 잡는다.

김 서린 밥공기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든든하게 하는지, 우리는 매주 같은 놀라움을 새로 배우게 된다.


또 잠깐 어지럽다며 벽에 기대 선 이를 보자, 누군가는 편의점 불빛으로 달려가 이온음료를 사온다.

땀 맺힌 병을 건네며 “천천히 마셔요” 하는 말이 약보다 먼저 듣는 위로가 된다.

또 어떤 이는 주방 칼들을 눈여겨보다가 빙긋 웃으며 “이건 제가 갈아서 올게요”라고 말한다.

숫돌 소리는 아직 없지만, 그 약속 하나로 부엌 공기가 반짝인다.

무뎌진 칼날이 다시 서듯, 하루 종일 흐트러졌던 마음들도 결을 찾는 것 같다.


말씀과 기도가 흐르면 이름들이 별처럼 하나씩 불린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무게가 조금씩 나누어진다.

큰 기적을 다짐하지 않아도 좋다.

오늘 필요한 만큼의 용기와 위로를 덜어 먹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예배가 끝나면 복도엔 과일 향이 먼저 퍼지고 있다.

집에서 따 온 무화과, 복숭아,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간식들이 여기저기 나타한다.

“많지는 않아도 같이 드세요.”

그 한마디가 참 푸짐하기만 하다.

그렇게 간식을 먹고있는 사이, 파란 양동이를 든 누군가가 조용히 나타나 음식 찌꺼기를 담아 뚜껑을 닫고, 싱크대를 훑어 닦고 있다.

이름표도 박수도 없이 교회 현관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그 뒷모습이,

오늘 우리 예배의 마지막 찬송처럼 오래 남는다.

이렇게 선한이웃교회의 수요일 저녁은 그래서 섬김으로 시작해 섬김으로 끝난다.

김 오르는 밥냄새, 차가운 이온음료의 안심, “칼 갈아서 올게요”라는 약속, 과일의 단내, 그리고 파란 양동이의 단단한 손잡이까지—이 모든 것이 우리를 같은 식탁, 같은 믿음으로 묶어 주고 있다.

삶의 문제들은 여전할지 몰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주님이 우리 사이를 살짝 지나가시며 “수고했다” 어깨를 다독이신 듯 하다.

만약 오늘이 유난히 길고 마음이 조금 비었다면, 수요일 저녁에 한 번 와보시라.

뜨거운 밥 한 숟갈과 “천천히 마셔요”라는 한마디, 반짝한 칼날로 더 곱게 썬 파, 나눠 깎은 과일, 그리고 소리 낮은 아멘이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크고 요란함 대신, 오래 가는 등잔불 같은 마음으로, 당신의 밤을 따뜻하게 밝혀 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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