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다섯살의 이순녀 권사님이 이사를 가시던 날
빗방울이 소리 없이 지붕을 두드리던 날, 권사님은 파주로 떠나셨다. 80세에 이곳으로 오셔서 85세에 이사를 가셨으니 다섯 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그 세월은 단순한 햇수가 아니라, 우리 곁에 남은 향기로운 기억이었다.
주일이면 전동 스쿠터를 조심스레 몰고 와 교회 마당에 세워두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다리가 불편해 계단 난간을 붙잡고 한 칸 한 칸 힘겹게 오르던 뒷모습, 다 올라와서는 숨을 몰아쉬며 “내 힘 다하는 날까지 예배는 드려야지” 하시던 말씀은 고집이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었다.
권사님은 늘 손에 뭔가를 들고 오셨다. 매콤한 총각김치, 첫 열매라며 내놓으신 딸기, 상추와 채소들. 족발을 준비해 드린 날, 두 눈을 반짝이며 아이처럼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밟힌다. 신방을 가서 기도를 드리면 두 손을 모으고 환히 웃으시던 그 얼굴은, 믿음이 준 순수와 평안의 표정이었다.
어느 날 권사님이 물으셨다.
“하나님 앞에서 민요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싶은데, 찬양이 아니라서 괜찮을런지?”
“정말 괜찮고 말고요.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춤인데, 노래가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보시고 마냥 좋아하실 텐데요.”
그 대화가 용기가 되었는지,
그 해 성탄절에 권사님은 정말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셨다.
흥겨운 민요 가락에 맞춰 추던 그 춤은 사람 눈에는 소박했지만, 하나님 눈에는 예배의 춤, 천사의 춤이었으리라. 그날 예배당에 번졌던 웃음과 눈물은 아직도 내 마음을 적신다.
멀리 파주로 가셨지만 권사님의 신앙과 웃음, 나눔의 기쁨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 빈자리는 크지만, 그 빈자리가 오히려 권사님의 고백을 더 또렷하게 들려준다.
떠나시기 전, 권사님은 젊은 목사의 손을 꼭 붙잡으셨다.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이 맺혀 있었고, 그 주름진 손에서 전해오는 온기가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나도 그 손을 꼭 잡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권사님,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삶에는 만남과 이별이 있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의 만남과 이별은 다르다.
세상의 이별은 아픔으로만 남지만, 하나님 안에서의 이별은 소망을 남긴다.
권사님과 함께한 다섯 해의 시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아쉬움이 아니라 감사이고, 허전함이 아니라 다시 만날 소망이다. 그래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을 수 있다.
만남과 이별은 우리 인생의 두 축이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은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이별도 하늘나라의 영원한 만남을 향한 문턱일 뿐임을 믿는다.
권사님과의 소중한 추억이 우리를 그 믿음으로 이끌고, 그 믿음은 오늘도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낸다.
권사님은 멀리 가셨지만, 그 손에서 전해지던 따뜻한 온기는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다.
그 온기는 따뜻한 잔향처럼 남아, 우리의 예배와 삶을 향기로 채워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