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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회상

시골 목사가 맞이하는 성탄절

by 강석효

성탄절은 해마다 오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성탄은 따로 있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성탄은 오래전 2003년 성탄절이다. 그날로 다시 돌아가 본다. 바람은 매서웠지만, 아이들을 맞이하러 간 그 시골 골목마다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그날따라 아이들이 유난히 많이 웃었다. 코끝이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작은 손에 들린 촛불 하나, 목청껏 외치던 찬양 한 소절, 그리고 아이들 손에 쥐어준 햄버거 하나가 그날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교회로 모여들고, 교회 안은 어느새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떠들썩해졌다. 나는 그날 아이들을 태우러 바삐 움직였고, 교회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예배당 천장을 넘고 있었다.


설교 제목은 ‘성탄절을 진정으로 맞이하는 사람은…’.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다.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 그가 진짜 성탄을 맞이한 사람이다." 아이들은 말없이 들었지만, 눈빛은 반짝였다.


이어진 ‘짱 선발대회’. 팔씨름 짱, 씨름 짱, 수수께끼 짱... 그 중에서도 혜진이가 남자아이들을 제치고 씨름 짱이 된 건 이날 최고의 반전이었다. 아이들은 놀랐고, 나는 웃었다. 하나님 나라는 늘 예상 밖의 아이들을 들어 쓰신다.


간식 시간엔 햄버거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아이들은 촛불을 들고 마을로 나갔다. 골목마다 울려 퍼진 찬양.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젖소 울음까지도 화음처럼 들리던 밤.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이 밤이 이 아이들 마음에 오래 남기를. 그리고 문득 나 자신에게도 물었다. '진짜 성탄은 무엇일까?' 그날 밤,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성탄은 누군가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준비하고, 기다리고, 맞이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없이 수고하고, 조용히 웃으며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삶의 진짜 의미라고 그날 배웠다.


성탄절 아침엔 예배당이 아이들로 가득 찼다. 혜진이와 우희가 세례를 받았고, 모두 함께 성찬에 참여했다. 나는 목사 가운을 입고 섰고, 아이들은 내 얼굴을 낯설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우리 목사님 맞아...?"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노래했다. “예수님 생신 축하합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외쳤다. “예수님 오셔서 감사해요!” 주님도 웃으셨을 것이다. 아니, 속으론 이러셨을지도 모른다. “감사하긴 뭘… 그냥 너희가 웃고 있어주면 됐다.”


선물을 나눠주며 상민이의 손을 봤다. 까맣게 그을린 손톱과 갈라진 손등. "이거 국보감이다!" 웃음이 터졌다. 나는 생각했다. 설날 전엔 이 아이들과 꼭 온천에 다녀오자고. 따뜻한 물처럼 이 겨울, 마음도 데워주자고.

아이들이 돌아간 뒤, 준서 엄마와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마음은 같았다. “힘들지만, 참 좋다.”

요즘 아이들은 말한다. “교회가 좋아요. 편해서요.” 그 말 한마디면 족하다. 잔소리 대신 웃음을 주고, 훈계보다 누구든지 환대하고 품어주는 교회. 그것이 이 아이들에게 성탄의 기억으로 남기를.


시골에서 이제 막 시작한 나의 목회란 결국, 저렇게 작은 손들을 하나하나 품는 일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시끄럽고, 때로는 엉뚱하지만, 그 속엔 눈물보다 투명한 웃음이 있고, 무엇보다도 사랑을 가르쳐주는 맑은 마음이 있다. 성탄의 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안아주셨을 것이다. 울고, 졸고, 보채고, 때로는 떼쓰던 우리를 품에 안고, 말없이 이불처럼 덮어주시며 속삭이셨을 것이다.

“얘야,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단다.”

그 음성이 지금도 귓가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교회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기다린다. 그 웃음이야말로 주님의 미소가 되어 예배당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고, 우리 마음에 다시 희망을 심어주는 노래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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