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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Dec 12. 2024

초등학교 보건교사의 특별한 점심시간

나는 특별한 점심시간을 누리는 보건교사다

초등학생들에게 점심시간은 담임교사의 감시를 받지 않고  뛰어다니며  놀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다. 반면 보건교사는 하루 중 가장 바쁜 최악의 시간이다.


 학생들은 점심시간에 달리고 뛰고 놀다가 넘어지고 부딪치고 찢어져 외상을 입는다.  보건교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건교사의 점심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 보건교사는 보건실에 학생이 없으면  점심을 먹으려고 보건실 문을 닫는다. 그때 한 학생이  나타나 아픈 표정으로 보건교사를 부른다.  보건교사는 다시 보건실 문을 연다. 보건교사는 학생을 처치한 후 다시 문을 닫는다. 급식실로 가려고 한 걸음을 내딛는다.  다른 학생이 보건교사를 부른다.  보건교사는 다시 보건실 문을 연다. 학생을 처치한 후 학생을 교실로 보내고   보건실 출입문에 식사 중이라고 팻말을 붙인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급식을 먹는다. 


  보건교사가 급식을 먹는 동안 학생들이 보건실을 찾는다. 모범생들은 보건실 문에 붙어있는 식사 중이라는 팻말을 보고 교실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대부분 보건실 앞 복도에서 망부석처럼 보건교사를 기다린다.  친구랑 온 학생들은  장난치고 수다를 떨면서  놀고 있다.  그들은 보건교사가 늦게 보건실에 올 수록 좋다. 왜냐면 수업을 빼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보건교사의 점심시간을 대충 짐작하고 의도적으로 그 시간에만  보건실에 오는 학생도 있다.  때문에 보건교사는 최대한 빨리 점심을 먹고 보건실로 가야한다. 보건교사는 빠르면 5분, 최소 15분 안에는 점심시간을 끝낸다.  점심시간에 이를 닦는 건 사치다. 많은 보건교사들이 위장장애를 겪는다. 그래서 점심을 먹지 않는 보건교사도 꽤 있다.


아는 보건샘은 점심 먹고 딱 한 번 산책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보건실 앞에 대기 학생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 "보건선생님, 점심 먹고 빨리빨리 오세요. 맨날 학생들이 보건실 앞에서 떠들면서 선생님 기다리잖아요."라고 호통 쳤다고 한다.  보건실이 교장실 옆인 경우는 절대 산책불가다. 최대한 빨리 점심을 먹어야만 충실한 일꾼으로 교장선생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저학년 학생들은 급식실까지 보건교사를 찾아온다. 아직 수업시간에 빠지는 것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보건교사는 점심을 중단하고 학생과 함께 보건실로 가서 학생을 처치한다. 보건교사가 처치하는 동안 밥과 국은 보건교사의 마음처럼 차갑게 식어 간다. 힘이 딸리는 보건교사는 차가운 밥을 먹는다. 처치하는 동안 입맛을 잃은 경우에는 음식물 폐기물통에 점심을 버리고 보건실로 복귀한다.


 보건교사 점심시간에 직장동료와 점심 메뉴를 정하고 수다를 떨며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걷는 낭만은 오로지 꿈이다.


나는 작년부터 보건교사 2인 배치교에 근무하고 있다. 보건교사인 내가 점심시간에 자리를 비워도 보건실에서 학생을 치료할 다른 보건교사가 있다. 커피까지는 못 마셔도 점심을 중단하는 일은 없다. 밥 먹고 교내를 한 바퀴 정도는 걸어 다닐 수도 있다. 보건실 앞에 학생들이 대기하지 않기에  관리자에게 혼날 일도 없다. 천천히 씹어서 점심을 먹을 수도 있다. 나는 무려 30분이라는 아주 아주 소중한 점심시간을 누린다.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보건교사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점심시간을 하루도 아닌 매일매일 누리는 복 많은 교사다.


해가 너무 좋은 날이었다. 꼭꼭 씹어서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 갔다. 역시나 뛰어다니는 학생들 천지다. 출생률이 떨어졌다는데 신축 아파트 한가운데 있는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바글바글 거린다.


 내가 점심을 먹고 행복한 산책을 하는 그 시간은 3, 4학년은 점심을 먹고 급식실에서 나와 교내 여기저기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시간이었다. 1, 2학년은 하교하는 시간 었고 5, 6학년은 점심 먹고 열심히 교실에서 졸면서 5교시 수업을 하고 있었으리라.



수돗가 옆을 걸어가는데 4학년 땡땡이가 나를 보고 달려온다.

-보건샘, 안녕하세요.

-응. 잘 지내지?

-네

뭐가 좋은지 계속 웃는다.

-요즘 왜 보건실 안 와? 건강해졌나 보다.

-그게 아니라요. 담임선생님이 보건실 못 가게 해요.


-왜?

-좀 참아보고 공부 못할 정도로 힘들 때만 가라고 하세요.

-그렇구나.

-선생님 사랑해요.

남편에게 듣지 못하는 사랑고백을 학생에게 받았다. 와 기분 좋다. 요즘 애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밥먹듯이 한다.


땡땡이는 3학년까지는 하루에 한 번 이상 보건실에 왔던 학생이다.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손과 다리에 상처가 나고, 여기저기 부딪치고. 4학년이 되고 보건실 방문이 뜸해 전학 간 줄 알았다.  땡땡이반 선생님이 좀 엄한 편이긴 하다. 아마도 선생님께서 아픈 학생들을 1차로 거른 후 정말 아픈 학생만 보건실에  보내는 것 같다.




운동장 끝에 단풍나무가 너무 예뻐서 보고 있었다.  2학년 땡땡이가 가방을 메고 다가왔다.  

-선생님 뭐해요?

-단풍이 너무 예뻐서 보고 있었어. 너무 아름답다. 눈 오면 떨어지겠지?


-그럼 선생님 내년에 보면 되잖아요.

-기다려야 하잖아. 떨어지기 전에 많이 보려고.


-그럼 선생님 단풍잎 줍는 것 어때요?

라고 말하며 단풍잎 하나를 주워줬다.

-고마워


오늘 땡땡이는 2교시에 배가 아파서 보건실에 왔었다.

-땡땡아,

-네?


-이제 배 안 아파요?

-쪼금 아파요.


-응. 그렇구나. 이제 어디 가요?

-학원가요.


-오늘은 배가 좀 아프니까 너무 차가운 음식, 치킨, 콜라, 피자 같은 인스턴트 음식 먹지 마. 보호자한테 죽 주라고 해서 죽 먹어.

-네. 선생님

-잘 가.



학교 중앙정원으로 걸어왔다. 중간놀이시간에 발목을 삐끗했다며 절뚝거렸던 땡땡이가 뛰어다닌다. 내가 뭘 잘 못 봤나 싶어 눈을 비볐다. 분명 땡땡이다. 오늘도 내가 속은 건가? 아니면 땡땡이가 아픈데도 참고 달려 다니는 걸까? 나는 땡땡이에게

-땡땡아, 발목 괜찮니?

-네


-그래도 오늘은 많이 움직이지 마. 선생님이 오늘은 심한 활동하지 말라고 했잖아.

-네.

나를 보고 머쓱하며 웃는 것이 아무래도 의심스럽다.



학교 텃밭 쪽으로 걸었다. 머리가 아프다며 보건실에 왔던 2학년 땡땡이가 가방을 멘 채로 친구들과  텃밭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곁에 갔다.

-뭐 해?

-선생님 이게 풀일까요?


-선생님은 잘 모르겠는데? 너는 뭐 같아?

-풀도 같고 무도 같고 뭔지 모르겠어요.


마침 옆에  70대 할아버지께서 손자로 보이는 1학년 학생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계셨다. 내가

-할아버지 이것 풀일까요? 아니면 무일까요?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감자예요.

라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할아버지를 우러러본다.  한 학생이

-원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런거 잘 알아.

 할아버지께서 웃으며  손자의 손을 잡고 가던 길을 가신다.


 나는

-머리 아픈 것 좀 어때?

-지금도 아파요.


-오늘은 머리 아프니까 집에서 푹 쉬어. 알았지?

-선생님, 저 학원 3개 가야 해서 못 쉬어요.


-어쩌냐? 엄마한테 오늘만 좀 쉰다고 면 안돼?

-우리 엄마는 절대 학원 안 빼줘요.


나도 모르게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야 말았다. 땡땡이는 꾀병으로 보건실 오는 학생이 아닌데 좀 쉬게 해 주지.  아플 때 조금만 쉬면 애들이 괜찮아지는데.

- 땡땡아, 학원가서도 너무 힘들면 학원 선생님께 꼭 말씀드려.

-네




보건실로 바로 가려다 오랜만에 4학년 복도 앞을 지났다. 2교시 체육시간에 피구공에 왼쪽 검지 손가락을 맞아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땡땡이가 손가락에 부목을 한 채로 쓸쓸히 걸어가고 있었다. 인대가 늘어났는지 손가락이 붓고 구부림이 안 되던 땡땡이다.  2교시 때 문진이 끝나고 땡땡이에게 물었었다.

-보호자 분들은 몇 시에 집에 오나요?

-엄마는 베트남에 계시고 아빠는 밤에 7시 넘어서 오세요.


-응. 그렇구나. 그럼 집에 다른 어른들은 안 계시나요? 예를 들면 할머니나 할아버지, 고모, 삼촌?

-안 계세요. 동생하고 아빠하고 저하고 이렇게 셋이 살아요.


-땡땡아, 선생님이 보니 괜찮아. 뼈와 뼈를 연결하는 인대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가 아주 조금 늘어난 것 같아. 저번에 손가락 부러진 형은 손가락이 옆으로 완전히 꺾였더라. 너는 전혀 꺾이지 않았잖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아. 일단은 담임선생님께 보호자에게 안내전화는 해주라고 할게.

라고 말했었다.


 땡땡이가 어두워 보인다. 아직도 아프고 아직도 손가락이 걱정되나 보다. 목소리를 한 톤 올려서

-땡땡아, 이제 손가락은 좀 어떠니?

-여전히 아파요. 근데 아까보다는 조금 덜 아픈 것도 같아요.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아질 거야. 집에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보건실에 들려. 선생님이 다시 한번 상태 살펴보게.

-네.




3학년 복도 앞으로 갔다. 매일 여기저기 부딪쳐서 찢어지고 삐끗하는 땡땡이가 복도에서 친구 옷을 잡아당기며 놀고 있다. 저라다가 넘어지면 머리에 타박상을 입을 수도 있고 손목, 발목등이 꺾일 수 도 있다. 아~~ 막아야 한다. 땡땡이에게 다가갔다.

-땡땡이 친구 옷 잡아당기지 않습니다.

-네

-땡땡아, 이렇게 친구 옷 잡아당기니까 다치지.

다치지의 지를 길게 늘어뜨렸다. 웃는다. 옆에 있던 친구도 웃는다.

-땡땡아, 너 소중하잖아. 네 몸은 하나잖아. 다치면 아프잖아.  특히 너는 조금만 다쳐도 엄청나게 아프잖아. 그러지. 안전하게 생활하자. 알았지?

-네


-다음에 또 친구 옷 잡아당기면 혼낼 거예요.

-네


아이고 웃으면서 대답도 잘한다. 그래서 귀엽다.  주 10회 보건실을 와도 반가운 땡땡이다. 옆 기간제 선생님이 너무 귀엽다 귀엽다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나이가 먹었는지 학생들이 너무너무 귀엽다.



과학실 앞을 지나갔다. 4학년 학생이 복도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한다.

-멈춥니다.

멈춘다. 엄하게 말했다.  복도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서 찢어지는 사고가 어제 있었다.

-복도에서는 어떻게 다녀야 하나요?

-조용히 걸어 다녀요.

-왜? 걸어 다녀야 할까요?

-잘못하면 다치니까요.

-맞아요. 땡땡이 소중하잖아. 다치면 아프잖아. 땡땡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잖아. 앞으로 복도에서는 걷자.

-네

마지막에는 부드럽게 말했다.  학생과 반대편으로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학생이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달린다. 내 말이 귀에 들릴리  없지. 점심시간이 몇분 안 남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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