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 내기 파마머리, 겁먹은 눈동자, 유난히 작은 키, 목에 걸린 커다란 핸드폰이 '저는 오늘 보건실에 처음 오는 1학년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왼손으로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감싸고 있는것이 오른쪽 엄지 손가락에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땡땡이에게 다가가 가방을 대기의자에 내려놓자고 했다. 땡땡이가 고개를 저었다. 유난히 무거워 보이는 핸드폰만 겨우 목에서 빼냈다. 학생을 처치의자에 앉혔다.
최대한 부드럽고 다정하게
-어서 와요. 몇 학년 몇 반인가요?
눈물 한 방울로 답했다.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를 좀더 높여봤다.
- 몇 학년 몇 반,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 1학년 0반 땡땡땡
작은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더 작아졌다.
-손가락 아파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다쳤어요?
-신발장 문 틈에 손가락이 끼었어요.
목소리가 점점 여리게였다. 만약 주변이 조금만 시끄러웠다면 땡땡이의 말을 듣지 못했으리라.
- 손가락 좀 보자. 잘 움직이는지.
학생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학생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여기 병원 아니에요. 주사기 없어요. 잠깐 손가락 움직임만 볼 거예요.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학생의 아랫입술이 삐죽 나왔다. 눈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땡땡이가 이번에는 손가락을 양쪽 허벅지 사이로 넣어다. 십여분 동안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봤지만 땡땡이는 꼼짝하지 않았다. 방과 후 시간이라 보건실에 학생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1학년 학생들은 보건실에 처음 오면 낯설어 불안해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학생이 학교 내에서 가장 신뢰하는 담임선생님을 부를 수밖에 없다. 담임선생님에게 사정이야기 했다. 담임선생님이 보건실에 왔다. 담임선생님을 보자마자 학생은 서러운지 울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이 땡땡이를 달랬다. 땡땡이는 한참을 울었다. 울면서도 손가락은 양쪽 허벅지 사이에서 빼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 땡땡이 유치원생 아니지? 이제 초등학생이잖아. 한 번만 손가락 보여줄 수 있니? 아프게 안 하고 보기만 할 거야.
라고 말했다. 그제야 양쪽 허벅지 사이에서 손을 빼 오른쪽 엄지 손가락이 보여줬다. 육안으로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 땡땡아!겉으로 보니 특별한 이상은 없네요. 자 잘 구부려지는지 보게 손가락을 구부려봐요?
땡땡이가 고개를 저었다. 담임선생님이 그 틈에 손끝을 살짝 만졌다. 놀란 땡땡이가 다시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왼손으로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감싸서 허벅지 사이에 또 숨겨버렸다. '만졌는데 울었다면 아픈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의 구부림을 보려고담임선생님과 내가 또한참을 달랬다. 그런데 땡땡이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손가락은 겨우 3분도 못 보고 30분이나 흘렀다. 보통녀석이 아니었다.
담임교사가 할 수 없이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상황을 설명했다. 어머니가 학생과 이야기 해보겠다고 했다. 학생의 귀에 수화기를 대주었다.학생이또 운다.보호자가 학교로 와 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학생이 우니 보호자도 당황했을 것이다.담임교사는교실로 갔다.
학생과 나, 둘만 보건실에 남게 되었다. 나는 학생에게
-땡땡아, 엄마 올 때까지 그림책 보고 있을까? 여기 재미있는 그림책 많아요.
라고 말했다. 그림책은 양손으로 잡아야 한다. 그 틈에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려는 나름의 계산이 깔린 제안이었다. 그런데 학생이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 올 때까지 시간 많이 걸릴 텐데 그럼 그때까지 뭐 할 거예요?"
라고 물었다. 학생이 이번에는 큰 목소리로
-핸드폰
이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내 청력을 의심했다.
처치대 위에 핸드폰을 학생에게 주었다. 학생이 핸드폰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문틈에 끼었다는 오른쪽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여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손가락이 아프다고 울던 그 학생이 맞는지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슬그머니 보건실밖으로 내 휴대폰을 가져갔다. 방금 전에 본 신기한 상황을 땡땡이엄마에게 알리고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오라고 당부했다. 10분 후 엄마가 도착했다. 엄마가 왔는데도 땡땡이는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땡땡이의 상태를 살피고 머쓱해했다. 엄마가 학생을 데리고 갔다.
손가락을 안 보여주거나 학생의 손가락 움직임을 시진해야 하는 경우에는 휴대폰 게임을 시켜야 된다는 새로운 진리를 터득했다.
두 번째 등장
7월의 어느 날이었다. 보건실 밖에서 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리고 울음소리와 함께 한 학생이 보건실에등장했다. 땡땡이였다. 요 녀석 또 왔구나.
땡땡이는 넘어졌는지 무릎에 피가 쥐꼬리만큼 나 있었다. 중간놀이 시간이었기에 보건실에 대기 학생이 엄청나게 많았다. 치료하고 있던 학생을 급하게 치료하고 땡땡이를 처치의자에 앉혔다.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 빨리 교실로 보내고 싶었다. 소독하고 밴드만 붙이면 될 정도로경미한 상처였다. 반과 이름은 저번 사건으로 이미 알았기에
-어떻게 다쳤어요?
라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고 계속 소리 내어 울었다. 상처를 보아하니 어디서 넘어진 것 같았다. 어떻게 다쳤는지는 담임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상처 소독하자. 먼저 물로 씻을 거야.
그때부터 일어나 나를 피하면서 더 큰소리로 울었다. 대기 중인 학생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그 광경을 바라봤다. 대기학생이 많아 땡땡이를 달랠 시간이 없었다.
-땡땡아, 일단 저기에 앉아있어요. 치료받고 싶을 때 선생님에게 와요.
라고 말하고 30분 정도 다른 학생을 처치했다. 땡땡이는 계속 울었다. 울음소리가 다른 학생을 처치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대기 중인 학생들을 다 처치하고
-땡땡이 이리 와봐요. 이제 상처 치료해 보자. 네가 너무 무서우면 선생님이 거즈에 물 묻혀서 줄게 상처 한 번 닦아볼까? 하나도 안 아파요.
라고 말했다. 젖은 거즈로 멀쩡한 내 손을 닦으며 시범을 보였다. 땡땡이에게 젖은 거즈를 주고 닦으라고 하자 땡땡이는 더 큰 소리로 또 울었다. 그때 마침 1학년의 다른 학생이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생겨서 왔다. 그 학생은 땡땡이보다 훨씬 더 많이 다친 상태였다.
-땡땡아, 일단 저기 앉아있어요. 여기 다른 반 학생 먼저 치료할게요. 근데 이 애도 너랑 같은 1학년 이래.
라고 말하고 1학년 다른 학생을 치료했다.
-너 정말 용감하구나. 이렇게 많이 다쳤는데 치료도 잘 받는다. 울지도 않고 멋지다
좀 과하게 표현했다. 예전에 1학년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 한 학생이 "저 유치원생 아니에요."라고 말한 적 있다. 1학년이라고 너무 과하게 표현하는 것도 금물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 학생은
-선생님, 저 원래 용감해요. 옛날에 더 많이 다쳤을 때도 안 울었다요.
-응. 선생님이 지금까지 학교에서 본 1학년 중에 제일 용감하구나. 정말 치료하는 것 하나도 안 아팠어요?
-네
우렁차다. 땡땡이가 울음을 그치고 용감하게 치료하는 그 학생을 지켜봤다. 용감한 1학년에게
-너 울지도 않고 용감하니까 선생님이 젤리 줄게요.
하리보 젠리 한 봉지를 주었다.
-감사합니다.
용감한 1학년을 때마침 엑스트라 연기를 잘하고 무대에서 퇴장했다. 땡땡이를 다시 불렀다.
-땡땡아, 이제 치료해 볼까요?
땡땡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3반 친구가 그랬지. 하나도 안 아프다고?
-네.
-너 옛날에 한 번이라도 몸에 상처 난 적 있어?
-네
-그때마다 잘 나았어, 아니면 안나아서 병원에서 주사 맞았어?
-잘 나았어요.
-그럼 이번에도 잘 나을 거야. 왜냐면 네가 건강하니까.
-네
-무서우면 눈 감아도 돼.
-안 무서워요.
-그래
젖은 거즈로 상처부위를 닦았다. 후시딘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땡땡이 정말 잘한다. 땡땡이 정말 용감하구나.
땡땡이가 웃으면서
-선생님, 간지러웠어요. 하나도 안 아파요.
-네가 용감해서 간지러운 거야. 선생님이 보니까 별로 안 다쳤어. 1주일 이내에 좋아질 거야. 집에서 보호자에게 상처치료 잘해주라고 해.
-네.
-선생님이 용감한 학생들에게만 주는 거야.
라고 말하며 젤리 한 봉지를 주었다. 젤리 받고 자랑스러워했다.
땡땡이는 이날 보건실에 온 지 50분 만에 퇴장했다. 아이고 힘들다.
학교 밖에서의 등장
8월. 여름방학 때였다.아파트 물놀이장이 개장했다고 학생들이 신이 나있었다. 유튜브에서 본 최화정 국수를 만들어 먹으려고 마트에 가서 국수와 국시장국을 사가지고 오는 길에 우연히 땡땡이가 등장했다. 땡땡이는아파트 물놀이장에서 물놀이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빠로 보이는 남자어른에게 내 귀에 들리게
-보건선생님이다
라고 말했다. 나는 아빠로 보이는 이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땡땡아, 물놀이했구나. 재미있었어?
-네
-그래. 다치지 않게 즐겁게 놀아.
-네.
세 번째 등장
9월 어느 날 땡땡이가 웃으면서 늠름하게 등장했다. 1학기와 전혀 다른 모습이 낯설었다.
-몇학년 몇 반, 이름 어떻게 되나요?
-알잖아요.
-알지. 그렇지만 말해보세요.
-1학년 0반 김땡땡
씩씩했다. 한 학기 동안 이렇게 자랐나 보다.
-어디 다쳤어요?
손가락을 보여주며
-손에 거스러미가 있어서 뜯었어요.
-응. 피가 조금 났구나. 일단 씻고 소독하자.
학생은 세면대에서 손을 씻게 했다. 소독약을 뿌린 후 밴드를 붙였다.
-밴드 너무 오래 붙이지 않아요. 밴드 오래 붙이면 주변 피부가 하얗게 되잖아요. 많이 다친 것 아니니까 물 만질일 있으면 밴드 떼어내고 지저분한 것만 만지지 않으면 됩니다.
-네. 안녕히 계세요.
보건실 밖으로 퇴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1학년 담당 보건선생님이
-선생님, 재는 왜 맨날 선생님한테 간데요?
-몰라요. 여기가 익숙한가 봐요.
-선생님, 땡땡이 생각나요? 1학기 때 무릎 쪼금 다쳐가지고 50분이나 울었던 것요. 인자 다 컸네요. 다음에는 친구 데리고 보건실에오겠네요.
-그러게요.
같이 웃었다. 학생들이 잘 커가는 모습 보는 맛에 보건선생님 한다. 담임선생님은 학생을 1년 보지만 나는 4년 본다. 식물 자라 듯 학생들 차라는 모습이 참 신기하다.
네 번째 등장
10월의 어느 날 땡땡이는 주인공으로 또 등장했다. 땡땡이가 손바닥에 상처가 있었다.
-어떻게 다쳤어요?
-중간놀이시간에 나뭇가지 가지고 놀다가 상처가 생겼어요?
-아이고, 그래서 울었어요?
-아니요.
-와, 용감하다. 선생님이 소독해 줄게요.
-선생님, 제가 밖에서 손은 씻고 왔어요. 선생님이 상처 생기면 씻어야 한다고 해서요.
-잘했어요.
소독하고 밴드를 붙여줬다.
-선생님, 밴드 붙이고 다니다가 물 만질일 있으면 밴드 떼어 낼게요. 그리고 지저분한 것 안 만질게요.
-응. 이제 다 컸다. 정말 똑똑하네.
땡땡이가 기분이 좋은지 웃으며 가벼운 걸음으로 퇴장했다.
다섯 번째 등장
11월 어느날. 땡땡이는 옆 선생님의 예언대로 친구를 데리고 보건실에 등장했다.
-선생님, 이 애 술래잡기하다가 넘어져서 무릎에서 피나요.
-응. 그렇구나. 이리 와요.
친구가 겁을 먹었다.
-선생님, 이 애 보건실 처음 온다요. 이 애한테 제가 안 무섭다고 용감하게 치료받으라고 했어요. 용감하게 치료받으면 젤리도 준다고 알려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