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외모의 다양성 존중 수업이야기
우리 사회 외모평가는 병적이다. 모든 부분에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지만 유독 외모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잘 생기고 예쁜 것에 대한 표준화된 기준이 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외모 기준은 남성보다 까다롭다. 그러나 모두들 그 기준을 달성하려고 성형하고 비싼 화장품을 사고 다이어트를 한다. 외모꾸밈에 많은 시간과 돈을 쓴다. 우리 집 대학생도 등교 전 한 시간 반을 외모 꾸미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 시간에 잠을 자든지, 독서를 하든지, 운동을 하면 좋을 텐데 말이다.
외모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외모평가가 난무할까? 모든 이의 교과서이자 모든 이의 선생님인 미디어가 외모를 획일화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여학생들은 얼굴이 작고 마른 체형의 걸그룹 멤버를 선망한다.
초등학생들도 외모평가에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초등학교에서 마른 체형을 가진 학생은 다른 학생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생들도 다이어트를 한다. 심지어 1학년도 한다.
언젠가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한 여자 아나운서가 안경을 착용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안경 낀 여자 연예인을 미디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5, 6학년만 되면 여학생들은 안경을 던지고 렌즈를 착용한다. 눈이 빡빡하다며 인공눈물을 주라고 수시로 보건실을 들락날락 거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초등학생들이 표준화된 외모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속상하고 답답해진다.
학생들이 외모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신과 주변인을 존중하기를 바란다. 본 수업은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외모의 다양성 존중에 대한 수업이야기다.
어린이 만화 '안녕, 자두야'에서 신체검사 날 학생들이 키가 작년보다 작아졌다는 자두와 뚱뚱한 윤석이를 놀리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윤석이나 자두처럼 외모비난, 비웃음, 놀림을 당한 경험이 있는 학생은 29명 중 17명이었다. 학생들은 뚱뚱하다, 못 생겼다, 피부가 까맣다, 눈이 작다, 키가 작다 등의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이런경우 학생들은 혼란스럽고, 화나고, 짜증 나고, 기분 나쁘고, 불편하다고 했다.
예쁘게 생겼다, 키가 크다, 날씬하다 등 외모 칭찬을 받은 적이 있는 학생은 29명 중 19명이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기쁘고 행복한 감정이 든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외모칭찬으로 불편한 마음을 느낀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다.
한 학생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데 아주머니 3-4분이 대기하면서 정말 이쁘게 생겼다며 커서 연예인 하라고 했단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자기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외모에 대해 말해 부끄럽고, 자신은 선생님 되고 싶은데 연예인 하라고 해 황당했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친척들이 키가 커서 좋겠다며 모델하라고 했단다. 자신은 과학자가 되고 싶은데 친척들이 모델하라고 하면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봐 부담스럽고 속상했다고 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할머니께서 만날 때마다 예쁘게 생겼다고 해 불편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외모칭찬이 분위기를 좋게 하고 관계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교직원 중에도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외모칭찬은 상대를 당황하게 하고 속상하게 하고 민망하게 부담스럽게 한다.
학생들의 외모평가를 주로 하는 이는 가족이었다. 형제자매보다 부모님이 더 자주 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하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학생들에게 뚱뚱하다, 날씬하다, 얼굴이 크다, 키가 작다는 둥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부모님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당까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외모평가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외모평가로 자녀를 웅크리게 만드는 이는 자녀의 친구가 아닌 부모인 당신인 경우가 더 많다.
3학년 학생이 뚱뚱해서 매일 줄넘기 500개를 하는데 줄넘기만 하면 다음 날 머리가 아프다고 보건실에 왔었다. 보호자에게 전화해 이 사실을 알리고 줄넘기를 좀 중단해 보자고 제안했다. 어머니께서는 " 뚱뚱하면 친구들이 놀리잖아요. 그래서 줄넘기 500개씩 시키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땡땡이가 친구들이 뚱뚱하다고 놀린다고 하던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러지는 않았는데요. 아무래도 뚱뚱하면 친구들이 놀리기 쉽잖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제가 가끔 땡땡이를 교내에서 보면 친구들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데요. 완전 친구들 사이에서 인싸더라고요. 어머니, 땡땡이는 야무져서 누가 놀린다고 웅크리고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방송댄스하면 머리가 안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땡땡이에게 맞는 운동을 시켜보세요. 어머니 땡땡이 살찐 편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친구의 외모를 보고 놀리는 학생이 있다면 놀린 학생이 문제인 것입니다. 놀리는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곳이 학교입니다. 혹시 땡땡이에게 그런 어려움이 생기면 언제든지 담임선생님이나 저에게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참고로 땡땡이는 뚱뚱하지도 않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오해하지 않고 잘 이해했다.
이 수업 전에 이미 행복추구권에 대한 3차시 수업이 있었다. 이 수업은 마지막 차시 수업이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엄한 인간은 나이, 성별, 외모, 성적지향, 경제력 등과 상관없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행복추구의 핵심은 자기 결정권에 있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 있어야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누구랑 신체접촉을 할지, 누구랑 결혼하고 누구랑 연애하고 누구랑 살지, 어떤 외모를 할지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 타인이 아닌 내가 자유롭게 결정해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나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처럼 타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도 마땅히 존중 되어야 한다.
타인의 외모에 대해 비난하고 비웃고 놀리는 것뿐만 아니라 외모를 칭찬하는 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선인 경계를 침해한 것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의 외모평가를 멈춰야 한다.
언젠가 김영철의 파워에프엠을 듣는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청취자가 다음과 같은 부류의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얼굴에 화장이 번진 상대에게 '얼굴에 화장이 번졌어.'라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냐고. 미국식 영어표현을 알려주는 코너를 담당하던 타일러는 당황했다. 왜냐면 미국에서는 타인에게 외모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실례이기에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조언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경계를 넘는 것이란다. 그래도 청취자의 질문이기에 적당한 표현을 찾기는 했었다.
당신은 어떤가? 혹시 걱정이나 조언, 칭찬을 빙자해서 타인의 외모를 평가를 하며 경계를 침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모든 몸을 위한 존중 외모 왜뭐'의 저자 경진주는 '100개의 몸에는 100개의 삶이 있다.'라고 했다. 어떤 외모를 지녔든지 인간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67542829
학생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까치의 특징을 발표해 보자고 했더니 학생들은 '다리가 두 개예요.' , '날개가 있어요.'등 답했다. 나는 학생들이 알지 못하는 까치의 특징을 위키백과에서 찾아 더 알려주었다.
우리도 까치처럼 우리만의 특징이 있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특징을 생각하여 학습지에 적게 했다. 학생들은 조용히 자신의 특징을 학습지에 적었다. 타인이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특징에 ▲표를 하게 했다.
땡땡이 특징
-손홍민을 좋아한다.
-인사를 잘한다.
-살이 많다(▲)
-키가 작다(▲)
-노래를 잘한다.
-동생과 잘 놀아준다.
-미술을 잘한다.
-코가 길고 얼굴이 크다.(▲)
학습지 작성이 끝난 후에는 친구들이 말하지 않으면 좋을 것 같은 자신의 특징을 발표해 보자고 했다. 아마도 5, 6학년이었으면 이 질문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3학년 학생들은 아직까지 순수하고 정말 도덕교과서 같은 마음을 가졌기에 손을 들고 발표했다.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과 부모님이 이혼한 것, 1학년 때 바지에 오줌 싼 것 등을 이야기했다.
학생들에게 포스트잇을 1인당 3개씩 주었다. 자유롭게 교실을 돌아다니며 친구의 특성을 살펴보게 했다. 단, 친구들이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특징은 살펴만 보고 포스트잇에 적지 않게 했다.
학생들은 새롭게 알게 된 친구의 특징을 포스트잇에 적어 칠판에 붙였다. 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반 친구들을 좀 더 자세히 보게 하고 싶었다. 외모 말고도 친구들이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친구가 말하기 싫어하는 특징을 파악하여 앞으로 친구에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게 하기 위한 의도도 숨겨져 있었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활동에 참여했다.
외모를 칭찬해도 괜찮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지나치게 자신의 외모를 자랑하는 것도 타인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초등학교 3, 4학년들은 알려주면 알려준 대로 그대로 흡수하는 능력이 특히 탁월하다. 나는 3, 4학년 학생들이 참 좋다.
-시를 잘 쓴다
-만들기를 잘한다.
- 노래를 잘한다.
-랩을 잘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동물을 좋아한다.
-운동을 좋아한다.
-인기가 많다
-자전거를 좋아한다
-피아노를 잘 친다
-말을 잘한다,
-달리기를 잘한다.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을 잘 그린다
-친화력이 좋다
-뜨개질을 잘한다.
-게임을 좋아한다.
외모 말고도 우리는 다양한 특징이 있다. 그런데 유독 외모에 대한 특징만을 찾아 말하는 경우가 있다. 기자들은 연예인의 외모에 대한 기사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예능에서는 여자 연예인들의 외모를 칭찬하고 남자 연예인들의 외모를 놀리며 웃음코드로 사용한다. 의사들은 성형을 시술이라고 표현하고 수술을 권장한다. 연예인들은 예뻐지기 위해 어떤 성형을 했는지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모두 똑같은 외모를 가진다면 얼마나 소름 끼치는가? 나는 도통 요즘 연예인을 보면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다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모의 다양성이 이렇게 삭제되고 있다.
보호자는 아무렇지 않게 자녀의 외모를 평가한다. 아빠가 고등학교 졸업하면 쌍꺼풀 수술부터 하자고 했다는 5학년 여학생은 쌍꺼풀 수술하면 아프냐고 걱정하면서 보건실을 찾아왔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자녀의 외모 말고 다른 특징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외모 말고 자녀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자녀와 함께 다양성 찾기 활동지를 한 번 작성해 보면 어떨까?
오늘부터 외모평가는 하지 말자. 외모평가는 하지 않는 멋진 보호자가 되어 자녀도 나도 행복을 추구하는 멋진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자녀 앞에서 더 이상 외모 평가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