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이성교제 수업이야기
"데이트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공원, 카페, 전대, 시내, 놀이동산, 아쿠아리움......
어느 정도 예상된 답변이었지만 그 안에서 생각해 볼 지점도 분명히 있었다.
특히 '카페'라는 답이 예상보다 많았다. 카페는 어른들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한 나는 초등학생들이 테이트 장소로 '카페'를 떠올렸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였다. 초등학생들이 그 공간을 자연스럽게 테이트 장소로 떠올렸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시내'라고 답한 학생들에게 물었다.
"시내 가서 뭐 할 건가요?"
"카페도 가고,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을 거예요."
'여수 밤바다'라고 적은 학생도 있었다.
"여수 밤바다를 어떻게 갈 건가요?"
"엄마한테 데려다 달라고 할 거예요."
이 학생은 보호자에게 이성교제를 당당하게 공개하고 지지받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순간 상상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여자 친구와 여수 밤바다를 본다고 데려다 달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말할까?' 분명 "쪼금만 한 것들이. 어른 흉내 내지 말고 대충 놀아."
하지만 그건 흉내내기가 아니라, 자신만의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진심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연애를 '어른 흉내'로만 가볍게 여기기엔, 그 마음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진지한 감정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어린이들이 말한 테이트 장소는 다양했다.
전대 산책하며 이야기하기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 타면서 추억 쌓기
도서관에서 서로 좋아하는 책 읽기
아쿠아리움 가서 이야기하고 사진 찍기
아이들의 대답은 단순히 장소가 아닌 그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느끼며 둘만의 추억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그때 한 학생이 말했다.
"저는 저희 집에서 단 둘이 만나고 싶어요."
나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보호자 없는 집에서 단 둘이 만나는 것, 어떻게 생각하나요?"
학생들 사이에 술렁임이 생기더니 누군가 말했다.
"그러다 고딩엄빠 될 수도 있어."
교실에 웃음이 퍼졌지만, 그 말을 한 남학생은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고딩엄빠 안 될 거야."
그의 단단한 목소리에 교실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았다. 나도 진지하게 물었다.
"집과 학교에서 여러분의 모습은 어떤가요? 같은 모습인가요?"
"아니요."
"왜 다른 모습인걸까요?"
"학교는 사람들이 많아서 눈치보여요."
"집에서처럼 행동하면 안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학생들은 웃었다.
"집은 편안합니다. 그러다 보면 경계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는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불편해도 ‘싫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또 서로 의견이 달라 다툼이 생겼을 때, 그 상황을 중재해 줄 사람도 없고요.”
아이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이성 친구를 만날 때는 단둘이 있는 공간보다는 사람들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게 좋아요.
그게 서로의 경계와 안전을 지키는 방법이에요.”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관계가 얕은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충분히 서로를 좋아하고,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그 감정을 존중하면서도, 그 감정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공간을 조율해 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가르쳐야 할 ‘교육’ 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