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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Apr 02. 2022

내가 너의 친구가 아니어도

스페인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 / Day 21 / 623.8km

오늘의 루트


    만 3주 차, 여행을 하며 요일 개념은 잊은 지 오래지만, 다행히도 매일매일 일기를 쓰다 보니 며칠 차인지는 까먹을 수가 없다.


    산 마틴 델 까미노에서 아스트로가까지 이동했다. 이동 거리는 대략 25km 정도다. 이제는 정말 20km대의 거리는 가뿐하다. 체력적인 여유가 생겨서일까, 마음가짐으로부터 여유가 생겨서일까, 중간중간 맘에 드는 마을에서 햇살을 쬐며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고, 맘에 드는 카페가 보이면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렇게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 기분 좋고, 그런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이 된 내가 느껴져 기분이 좋다. 이렇게 여유롭게 걸어도 도착한 마을을 구경할 시간이 충분하다. 그런데, 나는 왜 여태까지 그렇게 급하게 걸었던 것일까. 이제야 진정으로 까미노를 즐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보람차다.


    물론 다른 코스에 비해서 거리가 짧은 탓에 수월한 탓도 분명 있을 테다.

    또다시 30km 넘게 걷는 날이 생기면 힘들다고 칭얼거리겠지.


284.7km 남았다.


    나는 해를 쫓는 사람이다.


생각해보니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나라 중에 제일 서쪽에 있는 나라에 와있다. 그래서 그런가 해가 뜨는 시간도 보다 늦고, 해가 지는 시간도 보다 늦다. 게다가 해가 지는 서쪽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걷고 있으니, 나는 해를 쫓는 사람이 되었다.

    이론상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해가 떠 있는 시간은, 그러니까 평균적인 일조량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의 일출 일몰 시간과, 몸의 시간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한 내게 아주 적절하다. 아침 8시가 넘어야 태양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니, 느릿느릿 하루를 시작하는 내게 아주 적절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태양과 함께 일어나서, 태양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는 태양과 함께 까미노를 걷고 있는 것 아닐까? 태양과 하루하루를 함께하고 있다.




아스트로가 성당 앞에서의 나


    어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까미노를 끊어서 걷는 사람들이 있는 탓에 순례자들이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까미노를 레온에서부터 시작한 사람들이 꽤 많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처음 시작한 자기네들끼리 무리를 지어 걷기도 하고, 먼저 걷고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합류하기도 하고,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오늘 문득 혼자 걷고 있는 한 순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모습이 괜히 멋있어 보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어떤 역할도 맡지 않은 그녀가, 그녀 자체로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다른 무리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조차 없으니, 온전한 그녀의 모습 그대로가 느껴졌던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나는 함께 걷고 있는 동행들이 있기에, 그룹이 있기에, 그룹원으로서의 역할이 있기야 있지만, 크게 보면 내게 주어진 역할이 없다. 여행을 하면서, 까미노를 걸으면서 사회 속에서의 내 역할이 전부 지워진 것이다. 이곳에서의 나는 누군가의 아들로서, 친구로서, 그리고 연인으로서도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냥 ‘나’ 자체로 존재해도 괜찮다. 그런 내가 이렇게나 잘 걷고 있으니, 이제야 모든 역할이 지워져도 변치 않는 내가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누명을 써서 ‘한성호’라는 이름에 금이 가더라도, 변치 않는 내가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이 느낌은 나중에 혹시 모를 시련이 닥쳐왔을 때도 써먹을 수 있겠다. 이젠 내가 더 이상 A라는 사람의 친구가 아니게 되는 일이 생겨도 그것이 슬프지 않을 테다. 친구라는 역할만이 지워졌을 뿐, ‘나’는 ‘나’니까.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해도, 세상 모든 누구에게 잊히더라도, 그래, 그 일이 정말 가슴 아프도록 견디기 힘들고 괴롭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더 이상 누군가의 아들, 친구, 연인이 아니어도 ‘나’는 없어지지 않는 것이구나.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누가 뭐라 해도 결국 ‘나’는 ‘나’다. 끝에는 변치 않는 내가 존재하며 나를 지탱하고 있다.


아스트로가의 풍경


    혼자 걷는 그녀의 모습을 봤던 것 때문도 있지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오늘 팟캐스트로 실존주의에 대해 들으며 걷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글쎄, 까미노가 아니라 팟캐스트가 내게 이런 깨달음을 준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아무튼 까미노 위에서 들었고, 그 위에서 깨달았으니 까미노가 가르쳐준 교훈인 셈 치자.


    그래. ‘나’랑 더 친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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