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 / Day 27 / 825.32km
드디어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00km 미만의 거리만이 남았다.
레온 이후부터,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어느 곳에 얼마나 머물지 체크를 해둔 메모가 있다. 다음의 스케줄을 계획하고, 보다 쉽게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런 메모가 한 줄씩 지워지고 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마을 이름 하나씩을 지우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 그 메모에는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를 포함해 단 세 곳만이 남았있다.
문득 슬프다. 이별을 향해 걷고 있는 느낌이다.
끝을 향해 걷고 있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슬프다.
내가 나 스스로 이별을 향해서 한 발 내딛는 느낌.
내가 나의 슬픔을 자초하는 느낌.
만남에도 노력이 필요하듯이, 이별에도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렇다. 열심히 이별하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걷고 있다.
오늘은 사모스에서부터 포르투마린까지 약 34km를 걸었다. 욱희와 종우는 발걸음이 빠르니 먼저 보내고, 안나를 케어하며 옆에서 함께 걸었다. 나는 이번에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안나와 함께 걸어 볼 요량이었다. 안나의 페이스에 맞춰, 안나는 무엇을 보고, 들으며 걷고 있는지 함께 느껴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저 수다를 떨고, 안나를 격려하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이 강하긴 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순간들도 분명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글쎄, 생각이 많은 밤이다. 희한하게도 분명 여러 생각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음은 느껴지는데, 이것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무슨 고민인지 구체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고민의 해결책이나, 생각의 끝 또한 보이질 않는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나의 생각과 고민들이 이렇게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떠한 ‘답'을 얻기 위해 까미노를 걷고자 한다. 답이라고 함은 질문이 존재한다는 뜻일 테니, 각자가 각자만의 질문을 안고 이 까미노를 걷고 있는 셈이다. 답을 찾기 위해서. 나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답에 근접하지조차 못한 기분이 든다. 그저 ‘나는 왜 이 까미노를 걷고 있는가?’라는 질문만이 느껴지고 있을 뿐, 그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글쎄, 정말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뭐 때문에 이 길을 걷고 있는 걸까?
끝나가는 마당에 감히 답을 내려보자면, 혼자가 아닌 ‘같이'의 가치를 느끼기 위해 이 길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행 처음부터 동행 만들기를 꺼려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혼자서 이 고난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나만의 룰을 세우고 당차게 출발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사실상 그렇지 않다. 나는 늘 누군가와 함께 있다. 이처럼,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을 통해 ‘같이'의 가치를 느껴보라고, 혼자보단 둘이 낫지 않냐는 걸 깨달아 보라고, 이 까미노에 오른 것은 아닐까?
오늘은 맥주를 아주 진탕 마셨다.
안나와 함께 걷다 보니 아주 늦게 숙소에 도착했는데, 종우와 욱희, 그리고 영준이 형님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욱희의 멋진 요리와 함께 맥주를 곁들일 생각으로, 욱희가 요리를 하는 동안 마트에서 맥주를 조금 사 왔는데, 마시다 보니 한 캔이 두 캔이 되고, 두 캔이 더 많은 캔을 불렀다.
사실 지난번부터 고백해왔지만, 지금은 쓸 말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거의 깨달음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나의 글은 대체로 질문 투성이다. 나의 고민과 생각들이 담겨있는 글이다. 그런데, 그런 질문들과 고민의 끝에 어떠한 깨달음에 도달했는지, 더 이상 고민할 것들이 없어졌나 보다. 질문과 고민이 끝나니까 내가 쓰고 있는 이 일기가 나아갈 방향을 상실했나 보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정말 어떠한 깨달음에 도달해 있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아, 그래서 요즘따라 내 고민들과 생각들이 모호해지는 건가?
아무튼 여러 고민들과 생각들로부터 조금 해방된 이 기분을 만끽하련다.
여태 나를 괴롭혀 왔던 생각들과 고민들이 저 멀리 떠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또 하나의 성장이다.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