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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네 Nov 03. 2023

나만의 행복 패스포트 & 행복 월드컵을 개최하다

[올레 5] 14-1, 14코스 저지 & 협재

내가 처음으로 신나서 선택한 올레길, 14-1코스.

어제 혼자 걷다가 무서웠던 구간이 있어서 내륙코스는 망설여지던 찰나에 (이젠 적극적으로 알아보니) ‘올레 아카자봉’이라고 자원봉사자 인솔 하에 사람들과 같이 걷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늘도 나의 도전을 응원해 주시는 듯 운 좋게 오늘 근처 14-1코스를 진행하길래 망설임 없이 신청 & 고!



사람들과 함께 걷는 올레코스는 처음이었는데 매우 색달랐다. ‘오설록 녹차밭’에서 시작한 14-1 올레길은 짧은 곶자왈을 지나 이후로는 (또!) 공사로 인해 일자 코스가 펼쳐지는 다소 평범한 코스였다. 아마 혼자였다면 9.3km의 짧은 거리를 최단시간에 끊고 오후에 태닝을 하기 위해 완주만을 목표로 빠르게 걸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대화하며 걷다 보니 천천히 걷게 되었고, 기억에 남는 풍경의 수는 많지 않지만 그 여운은 좀 더 강하다.


나는 그냥 ‘우와’하고 지나쳤을 하얗고 큰 버섯을 어떤 분은 “개미에겐 우산이겠네”라고 표현하셔서 버섯 밑 아등바등하는 개미들도 그제야 보였고, 중간 스탬프 지점인 메밀밭에서 나는 스탬프 인증샷을 찍기 바쁜데 주변 10분 넘는 아주머니들은 “어머 세상에”를 x10 무한돌림 노래하셔서 나도 스탬프 대신 이 계절 아니면 볼 수 없을 메밀밭을 더 눈에 담았다. 그리고 내 생각이 더 확고해진 순간도 있다. 어떤 분이 풀 뜯는 말 두 마리를 보고 “너네는 참 행복하겠다”라고 부러워하시는데 어제 10코스에서 행복을 깨달은 나는 ‘가만히 아무 힘듦 없이 풀만 먹는 운명이라니… 너무 불쌍해ㅠ’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말들과 전신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소장될 여운을 남겨주었다. ^^

개미의 우산 & 다시보니 좀 부러운 식사중인 말

뒷부분에는 계속 쭉 뻗은 인도길이여서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용기 내어 유일한 외국인에게 말을 걸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그녀는 알고 보니 제대로 제주올레에 중독되어 휴가 때마다 제주도를 찾아 벌써 10번 넘게 왔다고 했다. 그런 곳을 한국인인 나는 이제야 발견하다니, 아쉬움과 동시에 감사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질문 폭탄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 ‘대박’이라고 감탄사를 내뱉으니 주변 사람들도 대화에 옹기종기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분이 갑자기 중국어로 말하기 시작하시면서 제주어까지 4개 국어로 대화가 이어졌다. Wow Olleh.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덕분에 혼자 걷는 것보다 체감상 더 빨리 완주한 기분이다. (+ 중국어를 배워서 중국어 아카자봉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제주도 4일 차만에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이후 숙소들은 포틀럭처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게하로 옮겼는데, 덕분에 남은 3일은 올레보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낮보다는 밤이 좀 더 기억에 남는다 ^^; 역시 인간은 결국엔 사회적 존재인가 보다. 만났던 많은 사람들 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2년 정도 세계여행을 다니며 캐나다에서 오로라를 본 기억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말했던 동갑내기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하고 싶으면 일단 해. 그 이후는 그때 물 흐르듯 답이 나올 거야.” - 오로라 -

(잘 지내고 있지 친구야? 너 정말 멋있었다!)

올레보다 사람이, 낮보다 밤이 조금 더 기억에 더 남는 하루 ^^;



다음 코스는 19.1km의 최장거리였던 14코스.

이 올레길에서 나는 올레 패스포트처럼 나만의 ‘행복 패스포트’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가장 큰 수확이다!


내가 올레에 중독된 이유 중 하나는 성취감이고, 그 성취감은 ‘목표’가 있기에, 그리고 그 목표가 ‘챌린징’ 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다. 요새 춤으로도 챌린지를 하는데, 내 인생에서 나는 어떤 행복 챌린지를 기획하고 달성할 수 있을까? 나의 행복도 무작정 행복하자~ 보다도 코스 별로 시작 스탬프, 중간 스탬프, 최종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면? 추가로 올레길 별 km와 예상시간, 그리고 별로 된 난이도가 나와 있듯이 내 행복에 걸리는 시간과 난이도를 설정해 본다면? 훨씬 더 현실적으로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다음 문제. 나의 행복 패스포트에는 무엇을 넣을까? 궁극적인 목표를 설정하려니 다시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때마침 또 길을 잃어버렸다. 올레가 순환코스이고, 공사 중이면 우회 도로가 있듯이 내 행복 목표도 계속 바뀔 수 있으니 일단 내가 행복했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자. 그렇게 갑분월, 나는 나만의 행복 월드컵을 개최했다 ^^ (이 서사로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대신 수영이 이겼다면 지금쯤 물 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4코스는 행복 패스포트 구상과 행복 월드컵을 하느라 다 좋아 보였다. ^^ 심지어 목에 두른 스카프도 바람에 날아갔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잃어버릴 정도로 무아지경으로 심취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지~한림의 14코스는 꼭 추천하고 싶은 코스다. 시작점인 ‘저지예술정보화마을’에서 ‘월령 선인장 자생지’까지 가는 길은 산책길과 숲길, 그리고 굴렁진 숲길까지 정말 다양한 숲길을 가로지르게 된다. 옥수수도 보고, 깻잎도 보고, 거미도 많이 본다. 바다가 멋진 에너지를 준다면, 숲과 산은 평온한 에너지를 준달까.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왔나 보다. 숲길 이후에 펼쳐지는 선인장 자생지 월령포구에서의 바다 뷰는 정말 아름답다. 이 때는 행복? 월드컵? 아무 생각 없이 풍경에 반해 사진 찍느라 무아지경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협재해수욕장!’ 에메랄드 빛의 금능 & 협재해수욕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너무 아름다워 차마 들어가지 않고 바라만 보고 싶은 곳이다.


어느새 걷기라는 행위 자체를 넘어 몸도 마음도, 그리고 이제는 머리도 제대로 굴러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첫날은 그냥 우와~로 시작해 둘째 날은 몸, 셋째 날은 마음, 넷째 날은 머리, 조금씩 이완되는 나 자신이 느껴진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걷기에 빠지진 않아도 되니 지금 셋 중 하나라도 뭔가 삐그덕 거린다면 조금만 걸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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