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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안테스 Oct 27. 2024

이 세상에 꼴사납지않은 게 있다면...

어른이 다니는 학교(22)

웬만한 건 꼴사납다.

꼴사납지 않은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정도만큼 어려운 게 없고,

중간만 가자라는 목표가 생각보다 

높은 목표라는 것을,

살다 보면 느끼게 된다.

중간만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쟁의 목표로서 중간을 가는 것도,

더 갈 수 있음에도 욕심을 접고 

중간에서 멈추는 것도,

정상에서 중간으로 내려오는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오늘은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다.

두 번째, 학급단합 활동을 하기로 한 날이다.

"시험 본다고 고생 많았다.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로 스스로를 자책하지는 말자.

세상에 꼴사납지 않은 것이 있다면,

진심, 열정, 열심....

이런 단어들 뿐이다.

웬만해서는, 

어떤 이유와 변명을 하든지,

꼴사납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진심을 다했다면,

열정을 다했다면,

열심히 했다면,

그걸로 됐다.


기숙사에 들어가서 씻고 쉬다가,

저녁 급식 먹고 19시에 다시 모이자.

오늘 일정을 알려줄게요.

영화 보고 선생님이 준비한 영화와 

관련된 질문 중 1개를 선택해서,

글을 쓰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그리고 함께 야식을 먹고, 

기숙사에 다시 들어갈 겁니다.


선생님이 생각을 해봤는데,

학급단합활동이니 다 함께 하면 좋겠지만,

시험기간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은 친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참석이 어려운 친구는 

선생님에게 개인메시지를 주세요."


아이들과 함께 볼 영화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

중간고사를 보고 선택한 영화는 

'행복을 찾아서'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진로에 대해 고민해보기를 기대했고,

이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꿈은 없다는 생각을 했으면 했다.

그때 아쉬웠던 것은 영화를 보고 

아이들과 얘기를 나눠보지

못한 것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첫 번째 본 중간고사였고,

안 그래도 스트레스받은 아이들에게,

영화 보고 토론까지 시키는 것이 망설여졌다.


이번에는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핸드폰, 노트북, 탭 등 

 모든 전자기기를 두고,

볼펜 한 자루 챙겨 오라고 했다.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모이기 전에

바쁘게 움직였다.

학교에서 영화를 집중해서 보기 가장 좋은,

국제 회의실에서 가서,

오늘 볼 영화를 폴더에 옮겨 놓고,

영상과 음향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을 했다.


그리고 미리 가사선생님게 양해를 구해 둔

지하 가사 실습실에 가서

영화를 보고 야식을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놨다.


오늘 내가 준비한 영화는 김 씨 표류기이다.

영화제목처럼 남자 김 씨와 여자 김 씨의 이야기이다.

남자 김 씨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한강에서 자살시도를 했지만,

한강의 밤섬으로 떠밀려가,

인구 천만이 사는 서울의 한강에 위치한 

무인도인 밤섬에서 표류한다.


여자 김 씨는 어렸을 때 받은 상처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본인의 방에 스스로를 가둔다.

여자 김 씨는 자신의 방이라는 섬에서 표류한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취향도 아니고,

심지어 영화 속 배경이 2009년이라,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거의 태어난 시기에 개봉한 영화나 다름이 없다.


아이들은 나름 진지하게 영화를 봤다.

내가 미리 나눠준 질문지에 열심히 메모하면서,

보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감상은 감상일 뿐이다.

느끼고 나누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을,

높고 낮음을,

잘하고 못함을 따지지 않는 것이 목적이었다.

영화를 보고,

아이들은 한 명씩 일어나,

각자 선택한 질문에 대한 발표를 했다.


나름 분석적으로 접근한 아이,

왜 하필 담임선생님이 이 영화를 선택했을까라고 주최자의

입장에서 분석을 한 아이.

자신의 아팠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아이...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느낌을 얘기하고, 나눴다.


아이들의 발표가 끝나고,

모두 가사 실습실로 이동을 했다.


당시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 음식을 먹으러 갔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영화 속 남자 김 씨가 밤섬에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욕구를 버리고,

하루하루 소일거리를 하며,

자족하는 삶을 보이다가 강렬한 열망을 가지는 계기가 있다.


우연히 발견한 짜파게티 빈봉지 하나와 그 속의 뜯지 않은 수프.

자장면에 대한 열망에 빠져,

어떻게든 농사를 지어,

자장면을 만들어 먹겠다는 주인공의 노력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차지한다.


가사 실습실에 들어간 아이들이 말한다.

"이럴 줄 알았어. 예상했다고"

"대박... 이게 이렇게 이어진다고"


내가 준비한 야식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짜파게티 한 박스.

아이들은 조별로 프라이팬에 물을 끓이고,

짜파게티를 만들어 먹었다.

나는 한쪽에서 열심히 떡볶이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중간고사 때는 준비도, 요리도, 뒷정리도 

아이들에게 시키지 않았다.

이번에는 짜파게티를 끓이고,

본인 조의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와 청소를 아이들 스스로 하게 했다.

그것도 교육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때... 즐거웠니. 아이들아.

선생님은 조금 걱정을 했는데,

너희들이 영화도 열심히 보고,

선생님이 준 질문에 대해 여러분들의

생각을 발표하고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선생님이 김 씨 표류기라는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스스로의 의지로,

혹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표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밤섬은 특이한 곳입니다.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실제로 한강에 존재하는 무인도이지만,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섬입니다.

인구 천만명이 사는 거대한 도시에,

실제로 존재하는 섬이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잊힌 섬이에요.


영화 코코에서 사람들이 죽으면,

어떤 곳에, 어떤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러다가 실제로 한번 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으면,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으면,

죽어도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관계는 태어나면서부터 스트레스입니다.

엄마, 아빠, 가족들 사이에서 

기대와 나의 역량 사이에서 고민하고,

10, 20대, 학생, 직장 생활, 내가 만든 가족...

어느 한순간 쉬어갈 틈이 없어요.

관계 때문에 괴롭고, 행복합니다.

아마 우리가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관계로 고민할 겁니다.


혹시...

혹시...

스스로 혹은 타인에 의해, 

표류하게 된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요.

견디는 것만으로,

충분히 대견한 일이에요.

그리고 

혹시라도 표류하고 있는 친구가 보인다면,

작은 용기 한번 내 보아요.

표류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여러분이 다가 선 한 걸음이,

인사 한 번이,

어떤 것보다 힘이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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