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아이의 얼굴이다
어른이 다니는 학교(20)
학부모 상담주간이 다가왔다.
거의 13년 만에 담임의 입장에서 학부모를 만난다.
6년간 학년부장을 할 때는
학년 전체 학부모를 모시고
학년 운영에 대한 것들을,
안내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학부모 상담이 있거나 면담이 있다는 말은,
학생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상담을 요하거나 학교생활, 교우관계로 인해
학교생활에 위기가 온 경우가 많았다.
2주일의 상담 기간 중 수업이 없는 공강시간이나,
야간에 상담이 가능한 시간 중,
학부모가 신청할 수 있는 칸을
50개 정도 만들어 신청을 받았다.
학부모 상담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것은 두 가지였다.
내가 2달간 지켜봤던 모습,
학부모님이 생각하는 아이,
아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다양한 모습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닌 입체적인
어떤 아이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가 과거에 겪었던 슬픔과 아픔, 시련을 알게 되고,
아이가 그런 얘기도 했어요라는 학부모님의 반응을 보며,
아이와 소통을 잘하고 있다는 안심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침 운동 프로그램에서
몸 움직이는 것을 너무 싫어하는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전국체전까지 나갔던
운동 유망주였다는 얘기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추리 소설 속 의문들이 하나 둘 풀려가듯
학부모님과 대화를 하면서,
아이에 대한 물음표들이 풀려나갔다.
부모로서 자녀를 키우다 보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
뒷 짐을 지고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이
나를 닮아 있다.
부모는 아이의 얼굴이다.
그 아이의 말에, 표정에,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세상에 대한 나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아이는 가르치고 싶은 것만을 배우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 된다는 말만을 가슴에 새기지 않는다.
식당에서 점원을 대하는 나의 모습,
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뉴스와 사건에 대한 나의 평가,
택시기사를 대하는 나의 태도,
곤궁한 상황에서 보인 나의 여유와 너그러움,
편협함, 이기심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것처럼,
나의 부끄러움은 닮지 않고,
그나마 나의 좋은 것들만을 흡수하면서 자랐기를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