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별다르지 않을 어느 날.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며 업무를 이어가던 중,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한 나는 '왜 그러지?' 하는 의문도 잠시 주변 사람들에게 들킬까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곤 운 좋게도 혼자 남겨진 사무실이라 안심했다.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맡은 일을 처리하고, 동료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퇴근지문을 찍고 나오니 사무실 안에서 갑자기 울었던 게 몇 년 전, 몇 달 전에 그랬던 거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조금 멍해졌다.
집에 돌아와 씻고 누워 생각을 하고 버티고 버티다 터져 많이 지쳐있구나 생각하고 이 작은 해프닝을 마무리지었지만 '지쳐있다는 것.' 자체가 결국 지금 이 권태로움의 원인이었나 무엇을 해야 하나 싶어 머리가 복잡해지는 시기였다.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적응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11월부터 몰아친 업무와 이로 인한 긴장감. 여러 관계와 현실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고꾸라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야만 했다. 일이야 쳐내면 그만이지만 계속해서 생겨나는 업무와 그로 인해 밤이나 주말 없이 계속해서 일에 시간을 써야 했고 3개월이 넘어가니 결국 몸과 마음이 탈이 날 수밖에.
그리고 또 하필 11월이었다. 이 지침의 시작이.
처음에는 한 달 만 버티자였고, 그다음엔 이번 주만, 그리고 그다음에는 오늘만 버티자로 매일 주문을 걸듯이 그렇게 지냈다. 일은 끝이 없었고 그 어디에서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부담감과 긴장감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건 일상이 되었고, 결국 모든 루틴 자체가 깨져서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자는 것도 결국 내 맘대로 되지 못하고 일어나면 회사에 가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자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무료해졌고, 건조해지고 건조해져서 결국 깨져버린 나. 딱 그게 나였다.
누가 이런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나도 나를 위로할 여유 따위 없는데.
그러다 문득 예전의 나는 이렇게 살았다 싶었다. 20대. 그리고 30대. 매일 이 무기력함과 건조함 속에서 싸웠다가 지쳤다는 걸. 왜 이 기분들과 감정들이 낯설지 않은지, 그런데 왜 지금의 나는 이 기분과 감정이 지독히도 싫은 건지 이제 비교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차라리 깨져버려서 울기라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참고 참다가 망가져버리진 않을 테니.
깨지고 우는 것도 이제 겨우 여유가 생겨서, 끝이 보여서가 아닐까 싶어 허무하기까지 했고 깨지고 나니 피곤해졌다. 아주 조금이나마 생긴 여유는 이 피곤함을 건조함을 태우기 위해 나를 위해 보내면 될 일이고, 이 여유를 누리고 나면 다시 활기를 찾아갈 예정이다.
그리웠다 이 공간이. 너무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