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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Dec 25. 2020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데로

겨울을 지나는 가는 중 

휴가가 시작되는 토요일 아침. 영하로 떨어진 온도에 수요일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예쁘게 남아 있다. 

영하 12도의 온도에도 아침에 달리고 시작한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달리는 내가 아니기에 오후에 날씨가 풀리면 조심히 달릴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 본다.  눈이 오고 추운 다음날 달리기는 조심해야 한다. 블랙아이스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는 잘 안 보이지 않지만 미끄러워서 넘어지면 다치는 블랙아이스들을 조심해야 한다. 


 집안을 정리하고, 밀린 빨래를 하고, 브런치를 먹고, 여유로운 토요일이 그렇게 지나가는듯 했다. 

이미 나의 토요일 아침은 시작되어 버렸지만, 오늘도 달리러 나간다. 

공원으로 운전하고 가는 길, 신호대기를 하는 중 날렵한 러너의 몸매를 자랑하는 4명의 남자아이들이 반대편에서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면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다. 오늘같이 아직 눈이 쌓여있고 추운 날에도 나와 달리는 걸 보니, 훗 너네도 달려야 하는구나.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데로, 달리는 사람들. 나와 같은 생각 하는 사람들을 멀리서 나마 보니, 기분이 좋다. 


눈이 예쁘게 내린 공원의 모습은 또 다른 행복을 준다. 매주 토요일이면 나를 만나는 이곳에서 매주 다른 나를 만나고, 매주 다른 기쁨을 느낀다. 눈으로 하얗게 덮인 공원 겨울의 차가운 공기. 춥다. 겨울이니까 추운 건 당연하다. 여름 더울 때도 달렸었다. 춥다고 안 달릴 이유는 딱히 없었다. 오늘은 7마일을 달려 보기로 했다. 


모든 달리기가 그렇듯이, 천천히 몸을 풀며 달리기를 시작한다. 오후 이어서 인지, 눈이 잔뜩 내린 후 주말 이어서 인지, 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눈이 내린 경사가 높은 그곳은 썰매를 타기 좋은 언덕이 되어 버렸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체 무리를 지어 썰매를 타고 있는 어른과 아이들. 서둘러 달려 그곳을 지나간다. 

12.19.2020 

바람이 차갑다.  바람이 맞이 하면 달려가는 동안 생각이 많다. 바람이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달려 본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평평한 곳을 달려도 바람을 맞이하고 달리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그 바람의 방향이 바뀌거나, 코스가 바뀌어서 바람을 등지고 달리기를 원한다. 그러다가 방향이 바뀌고 바람을 등지고 달릴 때 금세 잃어버린다. 그 뒤에서 힘을 실어주는 바람의 고마움을.... Thomas Gilovich (톰 길로비치)와 Shai Davidai (샤이 다비 다이)의 The headwinds and tailwinds Asymmetry (역풍/테일풍 비대칭성)이라는 연구서 중에서, 우리가 받은 축복 (꼬리 바람 ; Tailwinds)보다 우리가 직면 한 장벽 (역풍; Headwinds)을 더 강하게 기억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 상황이나 삶이 우리보다 더 쉽다고 가정한다고 한다.  


내가 느끼는 역풍 (Headwinds)을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장벽 (Barriers)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게 없고, 저게 없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아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 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람의 방향은 언제나 변하고, 내가 달려 나가는 길의 방향도 언제나 변할 수 있다. 내가 느끼는 테일풍 (Tailwinds)을 진정한 축복 (Blessings)이라고 알고 매일 하루하루를 감사하면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잘되면 내가 잘나서 잘된 것도 아니고, 못되면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장벽 때문이라고 탓을 하면서 살기보다는, 그 보이지 않은 장벽을 허물어 주고, 내가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 있게 손을 잡아주고 뒤에서 받쳐주고 응원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겸손한 리더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성공이 자기가 잘나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오기까지 믿어주고, 잡아주고, 끌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서슴없이 그 손을 내민다. 그렇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그런 축복 든든한 테일풍 이 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2.19.2020

그렇게 바람을 맞이하다, 바람을 등에 지고 달리다 보니 눈이 가득한 다리 앞에 도착하였다. 얼음이 가득한 호수, 눈이 가득한 다리, 조심조심 걸어서 지나가 본다. 



눈이 녹아서 물이 고여 있는 곳, 그 물이 다시 얼어 있던 곳, 서두르지 않고, 그렇게 눈이 오면 눈이 왔던 데로 그 길을 열심히 달렸다. 오늘도 달려서 이 겨울을 감사히 지나간다. 


7 miles ; 11 킬로; 1: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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