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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Sep 21. 2020

오래 달리면 달릴수록 오늘이 좋다.

첫 인생 마라톤 : 2020 뉴욕 시티 버츄어 마라톤 - 네 번째 페이지

6:00 AM 토요일 아침.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어제 준비해 놓은 옷을 입고 키친으로 내려간다. 아침묵상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수분을 공급해줄 커다란 물통과 함께 집을 나선다. 신호등 앞에서 신호 대기 중, 아차, 무선 이어폰을 두고 나왔다. 다 챙긴다고 챙겼는데... 다시 차를 돌려서 집에 돌아온다. 오늘 아침 몸은 느리게 움직이는데, 마음이 분주하고 정신이 없다. 침착하자.


7:15 AM 공원에 도착해서 간단히 몸을 풀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처음은 그렇게 천천히 쉽게 시작한다. 매주 같은 곳을 지나가는데, 매주 다르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오늘 내가 달려보지 않았던 긴 거리를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어도 보고, 팔도 흔들어도 보는데, 힘이 그다지 빠지는 거 같지는 않다. 1 mile 정도 달리고 나니 몸이 조금씩 풀리고 내가 좋아하는 구간에 들어선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 비치어 길이 보이는 그 길.


Good morning - 7:35 AM ©SEINA 



Look Up - 하늘이 점점 높아진다 ©SEINA



2마일 정도 몸이 풀리니 오래 길게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조금씩 잊혀 가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여유가 생긴다. 6마일이 지나고 며칠 전 사두었던 하드 레이션 팩 (Hydration Pack)을 메고 달려 보려고 차로 돌아와 물을 마시고, 매고 달리는데 불편하다. 고무호스로 된 연결된 물주머니가 내장된 팩이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게 장점인데, 물을 넣고 공기를 제대로 안 빼서인지, 출렁거리는 소리가 거슬린다. 한참을 그렇게 뛰다가 다시 돌아가서 차에 놓고 달려야겠다는 선택을 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과감히 멈추고 돌아갈 용기가 필요하다. 좋은 선택이었다. 


하이드레이션 팩 (Hydration Pack) ©SEINA



오늘 같이 긴 달리기를 하는 날에는 작은 선택이 큰 영향을 미치는 날이다. 준비가 잘 안돼 있으면, 뛰는 거리 동안 체력을 비축할 수도, 달리는 도중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준비만큼 중요한 것은 얼마나 유연할 수 있는가이다. 아무리 철저한 준비를 해도 변수는 가능하다. 그 변수까지도 준비를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렵다. 그러므로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만약 계획한 대로 달리가 진행되지 않는다 해도 그 변화는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하여 달리기를 마무리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한 정도의 긴 거리이기 때문이다.


달리는 동안 만나는 달리는 사람들 그리고 선물 같은 자연. 새를 만났고, 그 새를 사진에 담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 모습을 담았다.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려면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냥 되는 게 없음으로 나는 다시 한번 감사한다.



©SEINA


달리는 길에서 만나는 선물 ©SEINA



저번 주에 뛰었던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 듯하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내리막길 너무 반갑다. 남은 거리를 잘 달릴 수 있을 거 같다.



내리막길 ©SEINA


다시 돌아온 그곳. 온도도 다르고 이 길을 지나 달려가고 있는 나도 다르다. 처음 지나갈 때 몸의 무게랑 속도와 두 번째 지나갈 때 체감 무게와 속도가 다르다. 10'48" vs. 9'14" 돌아오는 길 빠르게 달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PeaceValley Park, Doylestown, PA ©SEINA



9.19.2020 - 내 인생 제일 길게 달려본 거리 ©SEINA



마지막 2 마일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들으며 열심히 달린다.


2시간 21분, 14마일, 22.59 km. 나이키 앱에서 알려 준다. 9월 19일. 레코드 부순 날. 내가 지금까지 뛰었던 가장 긴 거리. 나에게 주어진 아침에 시간에 감사한다. 내가 2시간 21분이란 아침 시간을 혼자 달리기를 하면서 쓸 수 있는 건강, 시간의 배려와 여유를 허락해 준 나의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아침이다. 2020년 9월 19일 이 눈물 나게 눈부신 아름다운 가을 나의 찬란한 페이지가 채워지는 순간이다. 오늘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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