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게임 플랜
스포츠 경영을 전공하면, 언젠가 스포츠 구단에서 일하게 되겠지. 유학을 결심하던 그날, 나는 그렇게 믿었다. 미국의 무대는 커 보였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OPT라는 1년짜리 취업 비자 역시 그 믿음을 굳건하게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흘렀다. 졸업 후, 나는 텍사스의 있는 스포츠 기업들과 구단을 향해 수없이 이력서를 보냈다. 연락은 오지 않았고,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메일함은 조용하기만 했다. OPT 비자는 단순히 신청한다고 유효해지는 게 아니었다. 미국에서 실제로 취업을 해야만 유지가 가능한 비자였다. 시간이 흘러가고, 불안은 커져만 갔다. ‘혹시 나는 준비가 부족했던 걸까’라는 자책도 찾아왔다. 불안감에 텍사스뿐만 아니라 미국 내 다른 지역 스포츠 구단에 이력서를 넣기도 하였다.
이력서를 보내는 일은 멈출 수 없었고, 그 사이에도 생활비는 끊임없이 필요했다. 이력서를 준비함과 동시에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짬을 내어 이력서를 작성하고, 또 면접을 준비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지만, 애석하게도 세상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곧바로 내어주지 않았다. 때론 간절함이 반드시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현실 앞에서, 마음속 무거운 침묵이 길어졌다
일식집에서 일하던 당시 사장님은 내 성실함을 높이 사시며 영주권 신청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해 주셨다. 당시에 내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 어느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흔들렸지만… 결국 나는 스포츠라는 직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스포츠 구단 취업이라는 꿈을 안고 있었지만, 현실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처음엔 미국에 좀 더 머무르며 배움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이든 남을 길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기대와 달리 좋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학교 측 서류 문제로 OPT 비자 발급 역시 신청을 하고도 계속 연락이 없었다.
OPT 비자 신청은 마쳤지만, 승인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미국은 졸업 후 일정 기간까지는 비자 없이 체류가 가능하지만, 그 시기를 넘기면 불법체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하루하루가 초조함으로 가득 찼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나는 체류 가능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결국 손에 쥔 것은 없었다.
졸업 후 체류 가능한 마지막 날까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두 동원해 보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렇게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비행기 티켓을 끊고 짐을 정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고, 깊은 좌절감이 서서히 마음을 잠식했다. 하지만 그 감정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내 목표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다시 되짚었다. 스포츠 구단 인턴십에 더욱 집중하고, 실무 경험을 차근히 쌓아 다시 미국 무대에 서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나는 단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해져서 다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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