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섭지코지는 몇 번 가봤지만 유민미술관은 처음이에요. 사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미술관인데요. 최근에서야 알게 된 유명한 건축가 안도타다오가 설계한 유민미술관은 제주에 본태미술관과 더불어 유명한 그의 건축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민미술관은 안도타다오가 설계한 자연과의 조화로운 건축구조를 보면서 아르누보 유리공예 전시를 볼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유민 미술관은 1894년부터 약 20여 년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던 공예디자인 운동인 아르누보 유리공예의 작품을 전시였는데요. 유명한 에밀 갈레와 돔 형제, 외젠 미셀, 르네 랄리크 등 주로 자연적인 소재와 영감을 표현한 프랑스 낭시지역의 아르누보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유민 아르누보 컬렉션은 중일일보의 선대회장이신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1917~1986) 선생이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직접 수집한 낭시파의 유리공예 작품들입니다. 아르누보 양식은 일상 속에 예술로 공예, 건축, 가구, 유리공예, 보석, 스테인그라스, 포스터 등 장식 미술을 통해 표현되었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은 아르누보의 표현법은 덩굴식물, 담쟁이 등의 식물형태에서 유연한 곡선무늬를 표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첫 번째 영감(靈感)의 방 INSPIRATION GALLERY에서는 프랑스 아르누보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그 당시 대표적인 상징주의 시인인 보를레르의 영향이 컸습니다. 자연이 보여주는 상징세계를 겸손한 자세로 관찰하며 세상의 순리를 이해하고 인간과 자연의 현상을 서로 일치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이 전시 장소는 자연이라는 주제에 가장 가깝게 마주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어두운 조명아래서 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명작(名作)의 방 MASTERPIECE GALLERY에서는 에밀 갈레의 작품을 볼 수 있는데요. 사실 유민미술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지 물어보면 이 공간과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독으로 전시되어 있는 버섯램프는 단숨에 저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버섯램프는 인간의 청춘, 장년, 노년을 자연의 변화에 빗대어 은유한 작품인데요. 이 작품 이외에 전 세계에 4개의 버섯램프작품이 있는데요. 그중 유민미술관에 있는 버섯램프가 가장 보존상태가 뛰어나다고 해요.
버섯 램프를 바라보면 난 어디쯤 와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서있을까 한번 상상해 봅니다. 과거의 나의 유년시절도 한번 떠올려보며 다시 회상해보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러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에 저의 모습을 투영해 보며 영원성이 없기에 지금의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세 번째 아르누보 전성기의 방 PEAK OF ART NOUVEAU GALLERY에서는 아르누보 미술이 정점을 이룬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낭시파 예술가들의 자연으로 얻은 느낌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과 혁신적인 공예디자인의 작품전시 공간이었습니다. 디테일한 작품 하나하나 사진에 담다 보면 그들의 표현기법에 놀라면서도 아름다움에 마음이 매료됩니다.
자연의 아름다운 곡선과 인간의 형태와 조화로운 모습 속에 자연과 인간은 결국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존재이구나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면 자신도 모르게 바다, 산으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간은 자연의 공간에서 태어나 결국은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네 번째 아르누보와 아르데코의 램프 LOUNGE GALLERY에서는 돔 형제의 낭시 가구장식 공방에서 제작한 전기램프 장식램프를 볼 수 있었는데요. 램프 디자인은 다양한 투명도를 갖는 유리의 특성과 몽환적인 빛을 이용하는 예술로 수많은 램프디자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화려하지만 아르누보의 아름다움에 그냥 멍하니 작품을 바라보게 됩니다.
꽃, 식물 문양의 곡선의 조명을 바라보면 화려하지만 불투명한 유리공간에서 비쳐오는 조명의 빛이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작품에 하나의 프레임에 담아봅니다. 작품이 겹치면서 하나의 빛깔을 만들어가며 각자의 색상을 비추는 모습에 또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나는 것 같아요.
유민 미술관은 저에게 잔잔하지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공간이었는데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누구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한다면 이곳을 추천하고 싶네요. 자연과 조화롭게 서 있는 미술관에 자연을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미술관에 나오면 푸른 제주를 만나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