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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레네 Mar 04. 2024

가장 사랑이 필요한 아이는

가장 사랑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을 요청한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필사하는 문장.

머리에 새기고 가슴에 새기기 위해서다.

학교엔 수많은 아이들이 있지만 교사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은 정해져 있다. 몇 안 되는 소수지만 나머지 다수 학생들에게 드는 에너지의 몇 배가 든다.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왜 그렇게 됐을까.

아니, 애초에 문제가 그 아이들에게 있다고 우린 확언할 수 있을까.


새 학기 첫날을 마치고, 이 문장을 다시 되새긴다.

한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 한 영혼을 품는다는 것,

한 영혼을 존재 자체로 바라봐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한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은

“선생님, 저 관심이 부족해요. 사랑이 필요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말을, 그들은 대충 이런 언어로 표현한다.


”어쩌라고요“

“아 씨발 뭐야”

“아 왜 저한테만 그래요 존나 짱나게”


그래서 쉽지 않다. 이런 거친 말들에 뒤덮인 그들의 내면을 존재로 만난다는 게.


문제 있는 아이는 없다.

문제 있는 부모가 있을 뿐.

우리 어른들의 이기심과 탐욕과 무관심이, 다음세대 아이들을 괴물로 만든다.

가슴이 아프다.


부모 모두 교도소에 있어 보호자가 없던 아이.

부모가 길가에 내버려 무당이 주워다 키운 아이.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를 피해 시설마저 여기저기 몰래 옮겨 다녀야 했던 아이.

이혼 후 엄마와 아빠가 각각 재혼해 양쪽에서 눈치 보다 집을 나와버린 아이...


그래서 사실, 교단에 있다 보면

아이들에게 화가 날 때도 많지만

같은 어른들에게 분노할 때가 참 많다.

이게 정말 부모가 할 짓인가,

이게 정말 어른으로서 할 짓인가,

갈수록 더 가관이고, 갈수록 아이들의 가슴에 새겨지는 상처의 골은 더 깊어진다.


마음을 다잡고자 끄적여보지만

나도 인공지능 로봇이 아닌 인간이기에...

거친 말들 속에 감춰진 그들의 내면을 바라봐주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아니 매일, 그분이 부어주시는 사랑이 필요하리라.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임을 해가 갈수록 실감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사랑이 없다.

기도하지 않는 나는 결국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부모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이기적인 한 인간에 불과하다.

사랑의 원천이신 그분께 날마다 연결되어 있을 때 그분의 사랑이 나를 통해 그 아이들에게 흘러가길. 


그래서 오늘도 기도한다.

내 안에는 눈곱만큼의 선도, 사랑도 없기에 그분이 부어주시길, 채워주시길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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