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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레네 Mar 11. 2024

요즘 애들, 생각보다 괜찮아요

서클로 만난 중학교 3학년 학생들

나의 새 학기 첫 수업은 조금 특별하다. 30명 전체가 둘러앉게 배치되어 있는 의자를 보고 들어오는 학생들마다 당황한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하나 둘 자리를 채운다.


첫 수업을 여는 이 둥근 원 형태의 모임은 ‘서클’이라 불리는 모임이다. 고대 원주민들의 대화 방식에서 유래한 대화 모임.


왜 서클 모임으로 첫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취지를 학생들과 나누며, 나는 3월 첫 수업을 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공유한 이 서클 모임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우리 모두는 동등하다.

2.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이는 교사라고 여러분을 하대하지 않을 것임을 상징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낮게 여기거나, 무시하거나, 욕을 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을 나와 동등한 한 인격체로 존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먼저 이렇게 본을 보이는 이유는 여러분도 서로를 이렇게 존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이 반에는 어떠한 서열도, 계급도,
폭력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여는 말에 다수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해 주어 고마웠다.


아이스브레이킹 시간과 여러 질문들을 돌아가면서 나누었고,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함께 나눴다.


우리 반이 1년 동안 어떤 반이 되었으면 좋겠나요? 우리 반을 떠올렸을 때 이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테이블 위에서 한 장씩 골라주세요.


한 명도 빠짐없이, 심사숙고하며 사진을 고르는 모습에 감동했다. 모든 친구들이 고른 것을 확인하고 난 후, 우리는 돌아가면서 그 사진을 고른 이유를 설명했다. 이 활동을 준비하며, 나는 아이들 각자가 원하는 우리 반의 모습이 각자의 목소리로 서로에게 전달되길 바랐다.

요즘 아이들이 개념이 없다 싸가지가 없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괜찮다. 그리고 때로는, 교사가 어떤 시선으로 보아주며 내면의 어떤 것을 이끌어 내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모습이 다르기도 하다.


다음은 실제로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 30명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 반이 어떤 반이 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사진을 고르고 이야기한 내용이다.

우리 반이 싫든 좋든 한 배를 탔잖아. 이제 살든지 죽든지 전부 다 함께하는 반 됐음 좋겠어.
다양한 재료들이 모여서 피자가 맛있듯이 우리 반에 다양한 애들이 있지만 하나로 어우러지면 좋겠어.
행동하기 전에 한번 멈추고 생각하는 반이 되면 좋겠어.
1년 동안 함께 힘을 합쳐서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반이 되면 좋겠어.
이렇게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남은 한 명까지 모두가 함께하는 반이 되면 좋겠어.
이 사진처럼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녹슨 것 같고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아도 내적으로는 끈끈하게 서로 연결되어있는 반이 되면 좋겠어.

이 외에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은 문장들이 정말 많았는데, 다 못 적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너무 고마워서, 그리고 놀라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희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너희 이미 답을 알고 있네. 아무도 폭력, 왕따, 패싸움, 개인주의, 원하지 않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기뻤다.


학교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교사의 말이 아니다. 학생들 자신들의 언어다. 나는 아이들이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 알고 있는 정답을 상기시켜 주고 수면 위로 드러내 확인시켜 주는 것이 교사의 할 일이며, 그럴 때 반대로 교사가 주입하는 것보다 백배의 효과가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말들. 아니 그 이상을 이미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고, 서로에게 하고 있었다. 이게 서클의 힘이 아닐까!


우리 각자는 이미 내면에 문제를 해결할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 그 힘을 발휘하여 더욱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도록 돕는 것이 교사가 할 일이라는 것. 이런 벅찬 확신과 함께 나는 새 학기 첫 수업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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