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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Jul 07. 2021

비 설거지하는 날

섬마을의 호우주의보 발령은 걱정할 것이 태산이다.

너무 많은 비로 봄철 내내 애써 가꾸어 놓은 곡식들이 상하지는 않을까?

4월부터 시작된 모내기가 이제 끝이 났는데 모에 물이 너무 잠겨 심어놓은 모들이 뽑히지는 않을까?

집안 어딘가가 구멍이 나 빗물이 새지 않을까 걱정할 것들이 많다.

섬마을의 어르신들은 비가 내리기 전에는 비설거지를 한다. 보통 설거지는 음식을 먹고 난 후 씻는 것을 말하는데 비설거지는 다르다.

비가 내리기 전 비를 맞히면 안 되는 물건들을 집안으로 걷어들이고 식물들이 쓰러지지 거나 뽑히지 않도록 지지대에 잘 묶어 준다.

텃밭에는 지금 호박, 가지 수박, 참외, 토마토, 방울토마토, 오이가 열매를 맺었다. 상추와 들깻잎도 자라고 있다. 이제 맺히기 시작한 열매들이 땅에 닿아 빗물에 고여 문드러질 수도 있으니 확인도 해야만 한다

뒷문 부엌 천장 부분에 지난해에는 천정에서 비가 샌 적이 있었다. 이번 비에는 어떨지 집안을 둘러보았다. 비가 들칠 경우를 대비해 문을 닫는 것 이외에는 비설거지 할 것이 없었다.

하루 내내 비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거센 바람이 동반되었다.  해바라기가 쓰러지지 않도록 비설거지를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해바라기 꽃이 쓰러질까 여전히 걱정이 된다. 하지만 내리는 비를 맞고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문을 열고 바라보며 걱정하는 것으로 비설거지를 대신한다.


밤사이 비는 그 위세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밤중에 바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문을 빼꼼히 열어보았더니 고통 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저러다 뭔가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폭풍우 치는 섬마을의 밤 호우주의보는 멈추지 않았다.

비에도 바람에도 지지 않고 오직 태양만 사모하는 해바라기가 폭풍우 치는 밤사이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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