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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Jul 20. 2021

식멍이 좋다 풍선초가 자란다

식물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 것을 식멍이라고 한다. 식멍은 물멍이나 불멍 산멍과 달리 뭔가 먹방같은 느낌이 난다. 그래도 가끔씩 멍하게 식물을 바라본다. 요즘 내가 식멍에 빠진 식물은 풍선초다. 식물을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비워진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 손은 식물을 살리기 보다 많이 죽이는 편이다.


아파트 배란다에서 봄철 내내 잘 키워놓은 커피나무를 화분 갈이를 하다가 그만 시들게 만들었다. 잘 자라주었던 커피나무를 생각만 해도 아쉽기만하다. 커피나무뿐만 아니라 삽목을 하고 이제 자리 잡은 허브나무도 화분 갈이를 해주었더니 시들어 가고 있다.


도시의 아파트와는 달리 시골에 뿌려놓은 식물의 씨앗들은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주어 기쁨이 되어 주었다. 코스모스는  지난 가을  코스모스 단지에서 엄마와 함께 씨앗을 받아온 것을 뿌린 것이다. 해바라기도 엘로우 시티 장성의 해바라기 씨앗이다. 백일홍도 친구로부터 씨앗을 나눔 받았다. 한여름으로 접어들며 꽃씨를 부려놓은 시골집주변은 잡초들과 더불어 꽃이 피어 알록달록 총천연색으로 물들여졌다.


그리고 풍선초다. 이 풍선초는 제주에서 물 건너 온 것이다. 작년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줄을 타고 끝없이 넝쿨을 만들며 올라가는 풍선초의 모습을 바라보며 매일매일  식멍의 즐거움을 누렸었다. 그런데 풍선초 열매가 맺히는 것까지는 볼 수 없었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식물이어서 인지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남은 씨앗을 시골로 가지고 왔다. 어린 시절 돼지막이었던 입구 쪽에 한 줄로 나란히 씨앗을 뿌려두었다. 그것을 모르는 털보 아저씨는 그곳에 또 강낭콩 씨앗을 심었다. 그 이후 좁은 땅속에서  풍선초와 강낭콩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초반전은 강낭콩의 승리였다. 강낭콩의 잎사귀가 자랄 때까지 풍선초 씨앗은 싹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강낭콩이 열매를 맺기 시작할 즈음 풍선초의 싹은 서서히 올라왔다. 그러나 강낭콩의 무성한 잎사귀에 가리어 기를 펴지 못했다.

폭풍우가 치고 난 후  풍선초의  덩굴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대를 지붕과 몇 개 연결해 놓았다. 그때부터 풍선초의 역전이 시작되었다. 강낭콩은 비를 맞고 시들어 버렸고 풍선초는 대를 타고 넝쿨을 뻗어 가기 시작했다. 이번 주에 보니 어느새 지붕까지 올라갈 만큼  자라있었다.

작은 풍선초 꽃이 피더니 이제 풍선초 열매가 맺히고 있다. 중앙에 하트 모양을 가진 둥근 모양의 풍선초 씨앗이 꼬투리 안에서 자리 잡고 있다. 풍선 초가 넝쿨을 뻗어가며 자라는 것을 보니 한여름을 잘 보내고 씨앗을 받아 풍선초 씨앗나눔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풍선초 꽃말은 어린 시절 재미라고 한다. 어린 시절 돼지밥을 주러 가던 곳에 풍선 초가 자라고 있다. 풍선초 식멍을 하다 보니 어린 시절 돼지막에서 내가 나타나면 코를 킁킁 거리며 꿀꿀대던 먹방 돼지 한 마리가 떠오른다. 그래도 풍선초를 바라보는식멍이 좋다. 



삭막했던 시골집 앞에 풍선초 덩쿨이 생기고, 꽃밭이 생겼다. 해바라기 꽃밭이 생긴 것처럼 내년에는 접시꽃밭이 생길 것 같다. 접시꽃 씨앗을 받고 싶단 말 한마디에 집까지 우편으로 보내주신 맘씨 좋은 이웃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년에는  접시꽃이 활짝피어  패랭이꽃님을 생각하며 우리나라 곳곳에서 웃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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