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사진을 많이 찍으면 나이 든 증거라는데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다. 산책을 나섰지만 오늘도 꽃 사진만 가득이다.
물론 하늘 사진도 많이 찍는다. 여름 하늘은 카메라 셔터를 자꾸 누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렌즈 안으로 보이는 네모난 하늘의 세계 속에 눈이 빠져 들어간다. 물론 카메라가 아니라 핸드폰이다. 렌즈가 핸드폰 액정으로 보이는 세계이다.
한낮의 열기를 피해 잠시 하늘이 반쯤 구름으로 가려진 해가 지기 직전인 오후 5시 오랜만에 산책을 나섰다. 만보 걷기를 시작했지만 만보를 채운 것은 두세 번뿐이다. 아침과 늦은 오후 3,000보는 걸어주어야 만보가 될까 말까 한데 요즘은 아침 산책도 하지 못하고 있다.
집 앞을 나오니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여름 남쪽나라의 고속도로를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배롱나무꽃이다. 도시의 가로수로는 많이 심어 놓지 않았지만 정원수로 많이 심어서 인지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여름날의 남도의 꽃은 배롱나무 꽃이라고 한다면 이팝나무는 여름날의 광주의 꽃이 분명하다. 광주 시내 도로의 가로수에는 이팝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곳을 가보지 않았지만 일단 내가 다니고 있는 길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으니 아마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혼자 걷기 좋은 길로 오랜만에 들어섰다. 이 길을 걷기 시작하자 우렁차게 들리는 소리가 있다. 매미소리가 고막을 뚫을 것만 같다. 매미가 이토록 우렁차게 울어대는 이유는 수컷 매미가 암컷 매미에게 구애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더 큰 소리로 울어대야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혼자 걷기 좋은 길이었지만 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 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울어대는 수컷 매미의 구애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여름날의 매타 쉐콰이어 길은 언제 걸어도 행복한 길이다. 거기에 도로까지 샌들을 신고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 자전거길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자전거는 거의 다니지 않는다. 무궁화 꽃길로 들어서니 울퉁 불통한 길 때문에 샌들이 조금 불편하다. 그래도 흙을 밟고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건강해지는 길이다.
배롱나무꽃 하면 붉은 배롱나무꽃만을 상상하지만 배롱나무꽃은 홍자색 꽃만이 아니라 보랏빛 배롱나무꽃도 있고, 흰색 배롱나무꽃도 보았다. 다른 색이 더 있을 수도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능소화와 100가지 색으로 100 동안 피어난다는 백일홍을 보았다. 백일홍을 닮았지만 좀 작다 생각했는데 좁은 잎 백일홍이라고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역시 웅장하다. 빛이 없어서 인지 배롱나무꽃 색이 잘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다. 몸에는 땀이 줄줄 흘렀지만 3000보의 건강과 멋진 하늘과 여름날을 장식해 주는 꽃구경을 하기 좋은 산책이었다.
하늘이 반쯤 구름으로 가려진 해가 지기 직전인 오후 5시 산책은 남도의 꽃구경길 걷기 덕분에 2000보가 모자란 만보 걷기이다.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집안이라도 걸어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