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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Aug 16. 2021

바람이 분다 노을이 진다 어둠이 내려앉을 시간이다

늦잠을 자려는데 오후쯤 오려니 했던 시골집 문수리를 위한 손님이 멀리서 일찍도 찾아왔다. 모처럼 섬마을까지 왔으니 비가 내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고동을 잡으러 앞바다에 함께 나갔다 왔다. 오후에는 조카들이 찾아와 조용한 시골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손님들이 들고 온 먹을 것으로 하루 종일 배가 불렀다. 

오늘은 올케언니가 내려와 고동을 잡으러 가자고 한다. 몸은 힘들어서 안 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동행이 필요한 고동잡이에 함께 했다. 닭볶음탕 재료를 사들고 와 점심은 닭볶음탕이다. 그런데 요즘 감자철이라서 그런지 감자가 너무 맛이 있었다. 배가 부르도록 감자를 먹고 배가 불러 커피를 마셨다.

너무 배가 부른 이틀 동안의 시골은 가을이려니 싶었는데 바람은 불었지만 오늘 한낮은 습도가 너무 높아 짜증이 나는 날씨였다. 해가 내려앉은 시간 집 앞으로 산책을 나섰다. 산책으로 배부름을 해소시키려는 것도 있지만 모처럼 시골 산책을 나설 참이었다. 늘 가는 길을 따라 걷는 시간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있다. 찾고 있던 쇠무릎도 발견했다.

윗길로 올라가려는데 어르신 두 분이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계셨다. 지난해만 해도 세 그루의 나무였는데 올해 한그루는 베어지고 두 그루만 남았다. 이넓은 마을에 나이 든 어르신 단둘이라니 적막함만 흐른다.


"왔냐? 안 온 줄 알았다"

"네 며칠 전에 왔어요"

"며칠 전부터 차가왔있 더는구먼"

"엄마는 어쩌냐 일성 그라냐"

"네 나빠지지 않으면 좋아진 거죠"

"그렇지 밥만 잘 묵으면 된다."

"반찬을 잘 못해서요"

"물이라도 말아서 묵어야지 나도 밥 묵기 싫으면 물 말아서 먹는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마을을 떠나고 이제 단둘이 남은 운모실 윗동네의 쓸쓸한 어르신들이 두 그루의 나무처럼 그렇게 해 질 녘 바람을 맞고 앉아계신다. 

바람이 분다. 노을이 진다. 섬마을에 곧 어두움이 내려앉을 시간이다.

문수리를 위해 처음으로 시골집을 도시에서 찾아온 손님은 마을이 넓다고 이야기를 했다. 산간지방이나 육지에 비해 우리 마을은 바다를 향해 뻥 뚫려 있어서 일 것이다. 이 넓은 마을에 사람이 살고 있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더 텅 비어 보이는 마을이 쓸 하기만 하다. 도시의 자식들도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집을 방문하는 것 같지도 않다.

"깨 값이 한대에 4만 원이라더라"

"그런데 왜 두 분만 나와 계세요?"

"다 가쁠고 윗동네에 우리 둘만 남았다"

"인생이 이렇게 허망해야"

올해 깨 값을 물어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쓸쓸한 외침이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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