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어둠이 내려오려는지 공기 마자 차분해진 시간이다. 갑자기 코끝으로 향기가 잔잔히 스며들어온다.
아카시아꽃은 비와 함께 이미 지고 없는데 아직 꽃이 피어있는가 아카시아꽃이 피어있던 논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역시 아카시아꽃은 없고 초록 잎만 바람에 날리고 있다.
혹시 산 위의 남은 꽃향기가 산 아래로 마을로 내려왔는가 올려다보았다. 산 위에도 하얀 꽃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바다에서부터 전해지는 향기 인가하고 바다를 향해 고개를 들어보니 담벼락 위로 고롱나무 꽃이 피어있었다. 지붕 뒤에 몇 해 전부터 자라기 시작한 고롱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고롱나무 꽃 향기가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랫집 고목인 고롱나무 씨앗이 우리 집 창고 담벼락에 몇 그루의 고롱나무를 자라게 만들었다. 주인이 떠난 빈집은 더 이상 집 주변을 돌보지 않았고 우리 집도 아버지가 떠난 이후로는 신경 쓰지 않은 창고 뒤편이다. 고롱나무가 세 그루나 아름드리 자라 향기를 가득 전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앙상한 가지가 겨울 지나고 고롱 나무에 꽃이 피니 생명이 가득 차오른다. 향기로 차오른다. 마음의 평화로 내려앉는다.
다른 지역으로 잠시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야산을 둘러보니 보랏빛 고롱 나무 꽃이 잎사귀와 함께 가득 덮인 것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고롱 나무란 오직 꼬랑갓 아랫집 고롱 나무만이 전부였던 시절을 살았는데, 나뭇잎만 무성할 때는 보이지 않던 고롱 나무가 산과 들에 씨앗을 뿌리내려 나무로 자라 작고 많은 열매를 맺어 꽃을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오월, 아주 잠시 동안만 느낄 수 있는 고롱나무 향기가 공기로 내려앉은 시간이다. 화려하지만 수수해 보이는 고롱 나무는 보려고 하는 이들에게만 꽃을 피운다.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마무리하다 불현듯 향기로 내려와 행복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