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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Jan 25. 2024

잠 잘자는 약 효과 있을까

수면과 통증의 강도에는 관계가 있을까? 저녁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깨는 엄마다. 잠을 제대로 못자니 돌보는 나도 죽을 것 같다.요 근래는 세 시간에 한 번씩 깨어 좀 나아진 편이이기는 하다. 그래도 통증이 심한 엄마를 보니 저녁에 깨지않고 잠이라도 자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나도 편하게 수면을 취하고 싶다는 마음도 간절하다.

엄마의 신경과가 예약 되어 있는 날이다. 두 주 전에 예약 날자였는데 약이 남아있어서 날짜를 미뤘다. 어제부터 광주에 눈이 내렸다. 하필 추운 날 외출해한다. 그러나 더 미룰 수가 없었다. 약이 하루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동안 참고 참았던 잠을 잘 자는 약도 처방받을 예정이다.


11시 반 장콜을 예약했다. 어제만 해도 장콜 예약자가 없었는데 오늘은 예약자라 많다. 좀 늦을 거라 생각했지만 다행히 일찍 차가 잡혔다. 12시 40분 병원에 도착했다. 피검사 실로 행했다.  피뽑고 난 후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한잔 마셨다. 쓴 커피에 기운이 빠졌다. 커피를 6개월 이상 끊고 다시 마시기 시작하자 숭늉 같던 아메리카노도 쓰디쓴 커피가 되었다.


1시 30분 신경과에서 대기다. 흰쌀밥에 달디단 차를 드려서 당 검사가 걱정된다. 그러나 오후라서 그런지 당이 높지 않다. 혈압도 정상이다. 항생제를 그동안 계속 드셨기 때문에 피검사 결과가 어찌 나올지 걱정됐다. 2시 30분경 엄마의 피검사 결과가 나왔는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이 떴다. 그러나 의사실에 들어간 환자가 이름에 불이 꺼졌어도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의사실에서는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렇게 더 기다리다 엄마 차례가 되었다.


"지난번 고관절 염증이 재발되었어요"

"수술했잖아요"

"그게 염증이 인공관절 문제였나 보더라고요. 항생제 주사도 맞고, 약도 먹고 있습니다."

"피 농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약은 그대로 먹어도 되겠어요"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피의 농도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일단 하나라도 문제 없으니 다행이다.

"저녁에 너무 자주 일어나서요 어떻게 해야할까요?"

"치매 할머니들이 드시는 약을 지어드릴게요. 수면제는 아니고 안전한 약입니다."

"통증 약도 처방 부탁드립니다."

"정형외과에서 처방된 약이 잘 안 들면 이 약을 드셔도 됩니다."

"약을 달라고 하면 제가 먹던 비타민 드리는데 드셔도 될까요"

"안됩니다 저한테 무슨 비타민인지 가져오세요"

"네"

함부로 비타민도 먹어서는 안된다던 의사는 알려줘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비타민 k 성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드리세요."

"비타민 k는 먹지 말란 말이죠"

약 처방이 끝나자. 의사는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낮에 주무시면 안 돼요."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 말이 없는 엄마에게 다시 낮에 자지 말라고 재차 이야기를 한 후 나에게 말했다.

"낮에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있게 하세요"


그렇게 진료가 끝났다.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들리 시간이다. 약국에 갔더니 말 많은 할머니가 약사에게 약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있었다. 그 시간에 차가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았다. 집에 가는 차가 빨리 잡혀서 좋은데 너무 빨리 잡혀버렸다. 할머니는 약사에게 말을 끊을 생각이 없었다. 약 포장이 끝나야 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바심이 났다. 할머니의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알았다. 방금 전 신경과 의사와의 면담에서 엄마의 앞 순서 환자였다. 할머니도 수면제 약을 받아 가고 있었다. 할머니의 약 값은 공짜였다. 엄마의 약 값을 먼저 계산하고 잠시 후 약을 받아 기다리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를 저녁에 재우는 약이나. 신경안정제 같은 우울증 약을 먹이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생각했다. 의사선생님이 우울증이라면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할 때도 괜찮다고 대답했었다. 식구들이 잠자는 약을 먹이라고 해도 그약을 먹으면 사람이 잘못될 것처럼 생각해 드리지 않았다. 그렇게 6년을 미루었던 수면에 도움을 주는 약을 처방받아 놓고도 과연 약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 중에 있었다. 11시 한밤중에 일어나 소변을 보고 싶다는 엄마가 왜마디 비명을 질렀다.

"오메오메 왜 이런다냐"

"벌레가 살을 갈아먹어야"

공처럼 볼록해진 허벅지를 만지며 벌레가 갉아먹고 있다는 엄마는 다른 때 보다 더 통증을 호소했다. 엄마에게 통증 약 한 알과 분홍색 약 한 알을 더 드렸다. 그리고 약의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분홍색 약 한 알의 효과는 빨리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 통증은 잦아들었지만 다른 불안감으로 잠을 뒤척이던 엄마는두 번 더 일어났다. 새벽 세시 이 후 아침 8시가 될 때까지 엄마의 침대는 쥐 죽은듯했다.

"엄마 일어나야지"

"조금만 더 자고"

"엄마 오줌 눠야지"

"아까 눴어야"

여전히 엄마는 비몽사몽이다. 어제 병원 외래에 다녀오느라 피곤해서 일까. 분홍색 약의 효과가 나타났던 것일까. 엄마가 처방받은 약은 수면제나 항우울제는 아니다. 중간중간 깨는 증상의 불면 치료제로  주로 쓰이는 의존성 없는 불면증약이다.  덕분에 나도 엄마를 돌보며 처음으로 5시간을 내리 꿀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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