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이러기야 정말 이러면 나 힘들어 "
운동치료실 옆자리에서 환자를 돌보던 여자의 얼굴이 나이가 파싹 늙어 보였다. 목소리는 비슷한데 혹시 어머니가 대신 환자를 돌보고 있는 것인가 하고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늘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 주위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마스크를 벗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얼굴이 연상되지 않았다. 여자의 얼굴은 모든 세상 풍파를 다 짊어진 모습으로 보인다.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은 상냥한 목소리에 늘 눈웃음을 잃지 않았기에 세상 근심 없는 여자로 보였던 것이다.
"당신 이러기야 정말 이러면 나 여사님 불러놓고 집에 간다"
남편을 협박해 보지만 남자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인지 강직으로 뻗은 몸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
"제가 엄마한테 하는 말을 똑같이 하시네요'
여자에게 인사차 내가 한마디 했다. 상황은 다르지만 엄마가 저녁이면 소변이 마렵다고 자주 일어날 때 하는 말이었다.
"이러기야 정말 엄마. 이러면 나 힘들어"
"느그 언니는 어디 갔냐?"
"언니는 자기 집에 갔지"
안부전화가 온 언니를 함께 지내는 것으로 생각하신다.
"수술 누가 나 데리고 가냐?"
"병원 내가 데리고 가지 그리고 엄마 수술 안 해 "
엄마의 인공고관절에서 생긴 허벅지 염증을 째야 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저녁이 되자 나에게 물었다.
며칠 전부터 디데이로 잡았던 날이 의사선생님의 휴진이로 하루 미루어야만 했다. 엄마는 분홍 알약을 먹고 단잠을 잘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자신이 자식들 주려고 해놓은 것이 없어졌다는 둥, 누가 훔쳐 갔다는 둥 엄마는 밤사이 망상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마다 일어나 소변이 마렵다고 하셨다. 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 혼자서 침대 난간을 옮기다가 큰소리를 내기도 했다. 새벽에는 좀 주무시겠지 생각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아픈데 잠을 자겄냐"
하룻밤을 꼬박 설쳐댄 엄마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통증 때문에 그리고 수술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날 보다 더 뒤척이셨던 것이다.
"안 오셔서 좋아진 줄 알았어요"
엄마와 나를 보자 정형외과 원장님이 가볍게 말했다. 그랬을 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의 염증 부위를 보더니 마취를 하고 째기로 했다. 엄마 말처럼 수술이 맞다.
마취제를 넣은 바늘이 부풀어 오른 염증 부위를 찌르고 살 속으로 깊이 들어가자 엄마는 외마디 비명소리를 질렀다. 얇아진 살은 가위로 가볍게 찢어졌고, 속에서는 곪은 창자 같은 것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의사는 손을 집어넣어 잔여물을 꺼냈고 거즈를 집어넣어 닦아 냈다. 엄마는 그때 마다 의사의 손을 치우려 했고 나는 엄마의 손을 꼭 붙잡았다. 의사는 염증을 쏟아낸 빈공간에 거즈를 집어 넣은 후 큰 거즈를 두껍게 댔다. 두려웠던 모든것이 순식간에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서 돌아온 엄마는 기운이 없다. 내일 또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 통증을 계속 견디어 내야만 하는데. 감당할 힘을 주소서. 오늘 밤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주무시면 좋겠다. 잠자는 사이에는 통증을 잊어버릴 수 있게. 오늘 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를 구박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