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4 김소월 <상쾌한 아침>
어린아이들은 ’발렌타인데이‘를 기억하고, 저는 혹여나 하며 ’탄핵인용의 날‘이 되길 기원하고요. 탄핵 기각을 외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뉴스화면에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이상한 조짐이 흘러나오기도 하고요. 일상이 무너진 지가 일년 중 한 계절이 가버렸어도, 끊어지지 않고 나라를 걱정하고 있으니, 우리 국민들의 정신력은 정말 대단한거 맞다 싶습니다.
이런 혼란에도 제가 할 일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루에도 십 수번씩 일정표를 확인하지요. 하지만 마음의 중심 속에 날카로운 투쟁의 언어가 가득찰까 두려워, 종종 시 한편씩 읽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합니다. 어제 도착한 시집 중에 그 제목이 책방의 희망사항 같아서 반가웠는데요, <시 읽는 일이 봄날의 자랑이 될 때까지>였습니다. 탄핵결정이 이루어진 후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면 이런 주제를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졌답니다.
어제는 지인의 밭에 가서 제 손바닥 만한 작은 크기의 봄동 10포기와 쪽파 등을 가져왔지요. 오랜만에 맡은 흙냄새와 땅벌레들을 만나니, 텃밭농사를 자처했던 시간들이 와르르 몰려들었습니다. 특히 감자를 심고 수확하고 연탄을 기부할 때 까지의 일련의 과정들... 그런데 그때의 제가 아닌가 봅니다. 일단 팔 다리에 달려있던 힘이 없어졌으니까요.^^ 봄동으로 만든 싱싱한 샐러드라도 잘 먹고, 근육다지기 운동을 해야될텐데,,, 생각만 머물죠.
요즘 김소월 시인의 시를 다시 읽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시인 중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서정적인 시를 썼다는 시인의 시. 무엇보다 여성의 감수성을 남성의 필체로 쓰며, 무겁지도 거칠지도 않게 살포시한 부드러움으로 때론 은미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의 글, 동시에 민족의 기개를 잃지 않고 심지를 세워 대중을 향한 날카로운 펜 촉을 감지하게 하는 그의 시 들을 읽노라면 '과연 시인 중의 시인이구나' 라며 감탄하게 됩니다. 오늘도 소월의 시 한편 읽어보시게요. 김소월시인의 <상쾌한 아침>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상쾌한 아침 – 김소월
무연한 벌 위에 들어다 놓은 듯한 이 집
또는 밤새에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아지 못할 이 비.
신개지에도 봄은 와서 가날픈 빗줄은
뚝가의 어슴푸레한 개버들 어린 엄도 추기고,
난벌에 파릇한 뉘 집 파밭에도 뿌린다.
뒷 가시나무밭에 깃들인 까치 떼 좋아 짖거리고
개굴가에서 오리와 닭이 마주 앉아 깃을 다듬는다.
무연한 이 벌 심거서 자라는 꽃도 없고 메꽃도 없고
이 비에 장차 이름 모를 들꽃이나 필는지?
장쾌한 바닷물결, 또는 구릉의 미묘한 기복도 없이
다만 되는 대로 되고 있는 대로 있는 무연한 벌!
그러나 나는 내버리지 않는다. 이 땅이 지금 쓸쓸타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금, 시원한 빗발이 얼굴에 칠 때,
예서뿐 있을 앞날의 많은 변전의 후에
이 땅이 우리의 손에서 아름다와질 것을!
아름다와질 것을!
사진, 지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