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이루어지는 길2
꿈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
또 다른 새로운 인생길이 시작된다.
- Paul Cluny -
이른 새벽 5시, 어둠 속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마지막 19km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향해 혼자 걷기 시작했다. 35일, 780km 대여정의 끝자락이었다. 혼자 조용히 걷는데 한국을 출발하기 전에 두려움과 걱정들이 생각났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어려운 상황에 무리해서 이 길을 오는 게 맞는 걸까?’ 마음의 짐을 갖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마지막 길을 걷고 있다는 게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어둠 속을 출발했는데, 어느새 여명이 밝아오고 해가 등 뒤로 떠올랐다. 그림자가 내 앞에 길게 드리워졌다가 점점 짧아졌다. 걷다 보니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도시에 들어섰다.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많아졌고, 목적지가 눈앞에 있으니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과 벌써 끝나버린다는 아쉬움이 뒤섞였다. 도시는 이미 도착한 많은 사람들로 축제 분위기였다.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얼굴은 밝고 즐거워 보였다.
드디어 10년을 넘게 사진으로만 보며 상상했던 산티아고 대성당의 웅장한 첨탑과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꿈을 꾸는 것처럼 실감이 나질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축하 인사를 하며 부둥켜안고 사진을 찍으며 환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당을 보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정말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부터 함께 걸어온 원정대와 사진을 찍고, 길에서 만난 친구들 과도 대성당을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기며 평생 잊지 못할 순간들을 잠시 즐겼다.
그리고는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고 완주증을 받기 위해 순례자여행사무소 가서 마지막 도장을 찍는데 처음 프랑스 생장에서 앞이 안 보이는 안개와 빗속에서 출발해서 눈보라를 뚫고 피레네를 넘으며 시작했던 긴 여정이 스쳐 지나갔다.
‘드디어 내가 포기하지 않고 해냈구나. 수고했다’하며 왼편 가슴을 두드리며 토닥였다.
사무소 받은 여권과 순례자 완주증을 받고 다시 대성당으로 돌아오는데, 길가의 야외 카페에서 순례자들이 맥주와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폴 클루니! 축하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자 길 위에서 만났던 많은 친구들이 자리에서 크게 환호해 주었다. ‘내가 이 낯선 산티아고 길에서 이렇게 많은 친구들을 만났구나.’ 그들의 박수와 환호가 앞으로의 내 인생을 응원해 주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산티아고 대성당의 정오 12시 미사에 참석을 위해 성당 안에 들어서는데 따뜻한 기운이 나를 반겨주는 느낌에 눈물이 핑 돌았다. 성당 안에서 미사를 보며 끝 무렵, 신부님께서 주시는 영성체를 받기 위에 앞으로 나가는데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영성체를 받고 입에 넣는 순간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멈출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간절히 원해서 온 길을, 좋은 친구들과 함께 걸어 무사히 걸어왔다는 감사에…
이 길을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그리고 어렵게 선택한 이혼과 견디기 힘든 외로운 시기를 버텨낸 나 자신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미사 후, 광장에 나왔는데 마음이 후련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 배낭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던 태극기를 꺼냈다. 출발 전에 먼저 다녀온 후배가 “형, 길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태극기에 사인을 받아두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예요”라며 권했던 것이었다. 그 말에 혹시 좋은 추억을 남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가져왔지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태극기를 펼쳐 보니 생각보다 컸다. 순간, 길에서 친구가 되어 함께 다니던 나무 지팡이에 매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팡이 윗부분이 뱀 머리처럼 생겨서 지팡이를 만든 사람이 앞부분을 잘라내려고 깊게 파놓은 홈에 태극기의 줄을 묶으니, 태극기와 지팡이가 하나로 합쳐졌다.
나는 광장에서 태극기를 힘껏 휘날렸다. 지나가던 한국인 순례자들과 외국인 친구들이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많은 사람들과 깃 발을 들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어느 스페인 방송국인지 모르지만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있는 내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고 해서 인터뷰도 했다. 그 영상은 지금도 스페인 어딘가의 남아 있을 텐데 언젠가 만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장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환하게 웃던 그 순간, 이 길에서 만났던 내 친구들이 떠올랐다.
유기견에서 좋은 주인 독일인 발렌티나를 만나 행복하고 걷고 있는 샐리, 배고픔으로 쓰러지기 직전에 나에게 샌드위치를 나눠주며 살려준 영국인 제인 할머니, 은퇴 후 70세가 넘은 나이에 힘들게 걸어 발가락에 물집에 잡혀서 힘들 텐데도 밝게 웃으면서 인사해 준 한국 어르신과 길에서 만난 친구들 얼굴들이 떠올랐다. 함께 웃고, 함께 힘들어하며 걸었던 모든 이들이 내 꿈의 여정을 풍성하게 채워 주었던 것이다.
같이 걸어준 까미노 친구들, 원정대 대원들, 그리고 멀리서 응원해 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를 전한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나의 꿈의 길은 끝났지만, 동시에 또 다른 인생길이 시작됨을 느낀다. 앞으로 어디를 향해 걷든, 이 길에서 받은 사랑과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길 위에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어주고 싶다.
35일간의 꿈의 길은 끝났다. 이제 나는, 혼자 시작하는 새로운 길 앞에 서 있다.
저의 꿈이 이루어지는 길은
2024년 4월 25일, 산티아고 길을 향해 출발하며 시작되었습니다.
64일 동안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4개국을 걸으며 1,100km의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그 길 위에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2024년 6월 27일 귀국 후 8월 18일 일요일부터 매주 일요일 새벽,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매주 한 편씩, 60주 동안 이어온 긴 여정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길었던 마라톤 이었습니다.
쓰는 동안 늘 제 안의 한계와 부족함에 부딪혔습니다.
그럴 때마다 글쓰기 모임의 작가님들과 문우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족한 글임에도 따뜻하게 응원해 주신 독자분들이 계셨기에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당분간은 휴식을 가지며, 길고 길었던 1년 6개월의 산티아고 길 여정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앞으로 브런치에서 어떤 방식으로 글을 이어갈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여러분의 응원 덕분입니다.
저의 꿈이 이루어지는 길 1, 2편을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또한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나누며 살겠습니다.
여러분의 길 위에서
언제나 부엔 까미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