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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수 Jun 03. 2021

그리운 막걸리 집

-사석원 「막걸리 연가」가 그리워지는 날

커버 이미지 : 사석원 「막걸리 연가」, 조선북스


한때 막걸리 열풍이 일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있고, 좋아하는 애주가들도 많지만 그때의 인기를 되살리지 못하고 있다.

막걸리 집은 무엇보다 안주가 푸짐하고 사람들의 정이 술을 마시게 한다.

   

젊은 날엔 흙벽으로 만들어진 주점에 자주 갔었다.

한동안 B대학 근처에 있는 막걸리 집은 지인들과의 단골 아지트였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흙으로 된 마당이 있고, 대나무와 예쁜 꽃들이 사랑스러운 주점이 우리들은 마냥 좋았다.

겨울날 대나무 사이로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 막걸리는 유난히 맛이 좋았다.

주인장의 기분에 따라 때로는 막걸리에 딸기나 다른 재료가 들어갈 때도 있었는데, 무엇으로 술을 빚든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큰 쟁반에 뜨끈하게 구워진 파전은 기본이고, 겨울에는 굴전과 뜨거운 국물 안주가 술맛을 돋구었다.  

    

K대학 근처에 있던 막걸리 집도 소신 있는 주인장이 맛있는 막걸리를 팔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파전과 토속 청국장과 정성 들여 담은 막걸리가 참 잘 어우러졌었는데...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든 까닭에,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결국 문을 닫게 되었나 보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사라진 막걸리 집의 부재가 늘 아쉽게만 생각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투박한 잔을 부딪치며 뽀얀 빛깔의 막걸리를 들이키던 시간들, 소탈한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껄껄껄 웃던 행복했던 시간들...

그래서 가수 이연실이 부른 「목로주점」이라는 노래를 지금도 나는 좋아한다.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에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대전에서 산 적이 있었다.

근무 시간에는 다른 동료들과 어울리고 즐거웠지만, 낯선 곳에서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기는 힘든 날이 많았다.

남편과 술잔을 기울이는 날도 있었지만, 때로는 술상을 차려서 혼자 마시던 시간들이 있었다.

안주를 직접 마련해서 막걸리 한 잔 하던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들.

요즘 인기 있는  ‘소확행’을 앞서 맛본 것 같다.   

  

그때 나의 곁에는 항상 한 권의 책이 있었다.

화가 사석원의 「막걸리 연가」

그 시절 그 책은 어떤 책 보다 나에게 위안이 되고 행복을 주던 책이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멋과 맛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화가 사석원.

그의 개성 있는 그림과, 구수한 이야기가 주점들의 매력을 고조시켜 주던 책!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책에서 소개한 내용을 따라서 남편과 전국에 있는 막걸리 양조장을 찾아가 시음해 보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막걸리 연가」는 대폿집에 얽힌 예술가와 문인, 영화 에피소드에, 집마다 다른 독특한 막걸리의 맛, 그리고 푸짐한 안주에 대한 절묘한 묘사가 화가의 글 솜씨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푸짐한 읽는 재미를 준다. 거기에 그 시절을 떠올리며 새롭게 그린 사석원의 한국화 60여 점, 저자와 돈독한 친분을 나누는 사진작가 이명조의 흥과 정을 담아낸 사진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출처 : 출판사 서평   

   

막걸리 한 잔이 그리워진 어느 날, 아무리 찾아도 「막걸리 연가」 책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많이 아끼던 책이었는데...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었나? 이사 다니면서 분실했을까?’

서점에도 가보고 인터넷을 뒤져도 절판되었다고 하니 아쉽기만 하다.

맛깔스럽게 글을 쓴 작가와 함께 막걸리 한 잔을 나누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까지도 하게 만든 책이었는데...          


젊은 날의 추억들이 그리운 어느 봄날, 남편과 막걸리 집 ‘○○포’를 찾았다.

「막걸리 연가」에서 읽었는지 아니면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알게 되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지역 예술가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곳이었다.

소설가, 시인, 화가들이 좋아하던 막걸리 집이라, 예술가들은 이곳에 가면 항상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가게가 오래되고 작아서 이전을 했다고 한다.

처음 가게는 가보지 못했지만 지금의 ‘○○포’도 오래된 역사를 말하고 있어, 주인장에게 사진 찍어도 되는지 물으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돈이 없어 화려한 음식보다 막걸리 한 잔에 간단한 안주를 놓고, 서로의 작품 세계를 논하던 가난했던 지역 예술가들의 단골집.

이야기를 나누다 영감을 얻게 되고, 그래서 예술가들의 멋진 작품들을 탄생시킨 막걸리 집.

벽면을 장식한 오래된 영화 포스트와 정감있는 낙서들이 그 집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예전의 명성과 달리 텅 빈 막걸리 집은 한산했지만, 주인 할머니가 직접 담갔다는 막걸리는 연륜만큼이나 맛과 향기가 좋았다.

토속적인 안주와 함께하는 달콤 쌉쌀하고 시원한 막걸리는 매력 그 자체였다.

남편이 농담으로 “우리는 부산에 살아도 이 좋은 곳을 십 년에 한 번씩 오네요” 하니, 주인장이 “그럼 다음 방문할 때는 나는 이 세상에 없겠네요”

하시며 농담으로 받아 주셔서, 슬픈 이야기인데도 함께 즐겁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주인 할머니와 헤어지면서 “자주 드를 게요”말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가지 못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문득 주인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니, 문득 청춘의 시간들을 함께한 추억의 막걸리 집들이 그리워진다.

두런두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야금야금 들이키던 달콤 쌉쌀한 막걸리 맛에 취하던 그날들이 하염없이 그리워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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