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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수 Aug 25. 2021

김민철 <문학이 사랑한 꽃들>

-33편의 한국문학 속 야생화 이야기

「문학이 사랑한 꽃들」

제목이 좋아서 구입했지만, 한 번 훑어보고 책장에 꽂아두고 있던 책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점점 꽃들이 좋아지고, 식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야생화와 문학에 관심이 많은 기자인 저자가, 33편의 한국문학 속 야생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문학 속 야생화를 다룬 단 한 권의 책”이라는 광고 문고가 강열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문학이 사랑한 꽃들 이야기다. 주인공이나 줄거리 대신 주요 소재나 상징으로 쓰인 야생화를 중심으로 문학에 접근한 책이다. 소설의 어떤 대목에서 야생화가 나오는지, 그 야생화가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그 야생화는 어떤 꽃인지 등을 소개하고 있다.
 5쪽   

꽃, 청춘을 기억하다 / 꽃, 사랑을 간직하다 / 꽃, 추억을 떠올리다 / 꽃, 상처를 치유하다 / 꽃, 인생을 그리다

5부로 구성되었으며, 읽다 보면 저절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저자인 김민철 기자는 어떻게 한 권의 책에 문학과 꽃을 이렇게 잘 접목시켜 놓았을까?     


'벚꽃 새해'에 만난 연인들- 김연수 <벚꽃 새해>

사진작가인 성진은 경주 남산에서 봄 풍경을 찍는데, 4년 전 헤어진 ‘구여친’ 정연으로부터 시계를 돌려달라는 문자를 받는다.

고장 난 명품 시계를 삼십만 원에 수리점에 팔아버린 후 며칠 후 연락을 받은 것이다. 성진이 시계를 되찾으러 갔을 때 주인은 시계가 짝퉁이라고 화를 내며 다른 곳에 팔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연은 진품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결국 둘은 명품 시계인 태그호이어를 찾으러 가기로 한다. 서울에 막 벚꽃이 필 때...

헤어진 연인이 돌려달라는 선물을 찾아 나서는 여정, 그것도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날. 이 상황이 참 기가 막힌다.

벚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벚꽃 새해라는 논리는 신선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벚꽃 새해에 다시 만난 소설 속 연인들...

그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은  김연수의 <벚꽃 새해>를 읽게 되리라.      


도라지꽃을 바탕화면으로 깐 아이-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이 소설은 남들보다 빨리 늙는 조로증에 걸린 열일곱 살 남자아이 아름이의 투병이야기다.

서른네 살인 어린 부모가 아름이를 돌보며 성숙해 이야기인데, 예전에 나도 감명 깊게 읽은 책이다.

그때는 도라지꽃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름이는 집안 형편상 성금 모금을 위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을 자청하고, 이를 계기로 골수암에 걸린 동갑내기 소녀 서하와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서하는 절 스님이 자기에게 도라지꽃같이 생겼다고 말했으나, 아름이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아름이의 노트북 바탕화면은 도라지꽃으로 깔리고 오매불망 서하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도라지꽃은 아름이가 유일하게 비밀을 나눈 아이, 첫사랑, 혹은 마지막 사랑이었던 서하를 그리워할 때 등장한 꽃이어서 이 소설을 대표하는 꽃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규칙 이종 작가가 선택한 쥐똥나무-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독특하다. 프로야구 초창기 최하위 성적을 기록한 삼미 슈퍼스타즈 스토리를 바탕으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와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로야구 초창기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그중에서도 최하위 성적을 기록한 삼미 슈퍼스타즈를 소재로 글을 쓴 것부터 흥미진진하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홍대 앞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술을 좋아하는 두 살 연상의 여대생을 사귄다. 그녀는 삼미 슈퍼스타즈 얘기만 해주면 허리가 휘어질 정도로 웃음을 터트리며 좋아했다. 둘은 술을 마시며 젊음을 탕진했다. 그 부분에 쥐똥나무가 나온다.     

결국 한 그루의 쥐똥나무만 한 스트레스가 서로의 마음속에 자라나 버렸고, 급기야 서로가
어우러진 울창한 쥐똥나무의 숲이 형성되어 버렸다.
35~36쪽

 "한 그루의 쥐똥나무만 한 스트레스가 급기야 쥐똥나무 숲을 형성한다"는 문장이 가슴에 오랫동안 남는다.

열매는 쥐똥처럼 생겼지만 너무 이쁜 흰꽃과 향기가 좋은 쥐똥나무...

박민규에 따라붙는 것이 ‘무규칙 이종’ 작가라는 수식어다.

문학평론가 김형중 씨는 2010년 <작가세계> 겨울호에서 “박민규 소설이 애중적으로나 평단에서나 지지와 인기를 한 몸에 누리는 것은 염세와 편집증과 하위문화와의 장르 횡단, 그리고 유머가 결합된 특유의 이종격투기적 글쓰기 덕분”이라고 했다.     


“환경오염의 상징이라고?”억울한 미국자리공-김형경 <꽃피는 고래>

김형경의 소설에서는 미국자리공이 환경오염의 상징처럼 나온다.

미국자리공은 과연 생태계 파괴 식물일까?

이 소설은 공해 문제를 다룬 환경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에 나오는 처용포의 실제 배경지는 우리나라 공업도시의 상징인 울산광역시에 있는 장생포다. 울산 장생포는 1980년대 초까지 포항 구룡포와 함께 동해안의 주요 포경 기지였다. 그런 처용포 주변에 정유 공장 등 큰 공장들이 들어서자 숲은 황폐해지면서 미국자리공 같은 귀화 식물이 자리 잡는다.
47쪽

산에 가면 자주 볼 수 있었던 식물이 특이한 이름의 미국자리공인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미국자리공이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토양을 산성화시킨다기보다 산성 토양에서 잘 자랄 뿐이고, 숲 속이나 음지에서 견디는 내음성이 강해 쉽게 번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때 굉장히 인기 있던 드라마였던, 정은궐 <해를 품은 달>에서는 무녀 월에게서 나는 은은한 난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난 또는 난초는 난초과 식물을 통칭하는 말로, 난초라는 식물은 다로 없다. 식물 중 가장 진화한 그룹으로, 난초과는 학계에 알려진 종만 3만여 종에 달할 정도로 식물군 중 가장 규모가 크다.”

58쪽     


정이현의 <달콤한 도시>에서는 여성 감성을 자극하는 장미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세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31세 미혼 여성 오은수다. 도발적이고 세련된 도시 여성의 연애사를 주제로 한 이 소설은 한 때 젊은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구효서의 <소금가마니>에서는 구불구불 약한 듯 강한 모성, 용버들을, 성석제 <협죽도 그늘 아래>에서는 신부의 녹의홍상 닮은 협죽도를 다루고 있다.     


자귀나무 꽃빛의 홍조를  띤 소녀-윤후명의 <둔황의 사랑>

둔황은 중국 간쑤성 서북부에 있는 도시로, 실크로드의 관문이며 세계 최대의 석굴 사원인 막고굴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실업 상태인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 친구를 만나고, 아내와 저녁을 먹고 돌아와 잠들기까지 하루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 넘나들고 지역적으로는 중앙아시아 둔황에서 서울까지, 시대적으로는 고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 걸쳐있다고 하니 나도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귀나무 꽃빛의 홍조를  띤 소녀라니..

자귀나무 꽃은 공작새가 진분홍색 날개를 펼친 모양 같기도 하고, 길이 3센티미터 정도의 붉은 명주실을 부채처럼 펼쳐놓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좀 떨어져서 이 꽃이 핀 나무를 보면 소녀들이 단체로 부채춤이라도 추는 듯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윤후명 작가는 야생화에 조예가 깊다. 백여 가지의 꽃과 나무에 얽힌 사연을 엮은 산문집 <꽃, 윤후명의 식물 이야기>를 출간했을 정도니, 작가의 식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오정희 <옛 우물>에서는 금지된 사랑과 관능 담은 영산홍 이야기를, 권여선의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에서는 끝내 이룰 수 없는 지점, 비자나무 숲을 다루고 있다.

권지예 <꽃게 무덤>에서는 자주색 비로드 치마 펼쳐놓은 함초밭을 보았고,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에서는 시큼한 싱아 줄기의 맛을 표현했다.


저자는 책 한 권에 33편의 국내 소설과 100여 개의 야생화를 모았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배초향, 사과꽃, 사철나무, 상수리나무, 냉이, 박태기나무꽃, 조팝나무꽃, 등나무, 엉겅퀴, 청미래덩굴, 치자꽃, 진달래, 칡, 배꽃, 백합, 원추리, 탱자, 망초, 느티나무

이 꽃들에 어울리는 문학 작품들이 이 책에서 잘 소개되어 있다.

문학 작품 속 어디에 이 꽃들이 나오는지 읽으면서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문학이 사랑한 꽃들」에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읽으며 야생화를 공부해 보는 것도, 여름이 가는 길목에서 또한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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