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살아있음의 역동

본질로의 초대

by 고요의 향기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공간 이동도 좋아하고 낯선 것을 만나는 그 자체가 새롭다. 더불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일상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곤 한다.


더구나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내다 보면 오늘처럼 종일 집에 있을 수 있는 날은 하루가 통째로 선물로 들어온 것 같다. 그것은 그간 내게 하루 종일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좀처럼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결핍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의 의미를 회복해 준다.


어떨 때에는 등산을 하면서 배가 고프고 춥기도 한 고통스러운 상태가 되기도 하는데 그때 느끼는 결핍감은 다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욕심을 제로화하여 순수한 상태로 만들어준다. 마치 아무 맛도 없는 듯한 순수한 차를 마시고 나면 입맛이 순수해져서 더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않아도 맛있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여기 이 일상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그 고통스러운 상태가 우리의 삶을 더 역동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젊어서 고통은 사서라도 한다는 문장에는 바로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처음에는 막상 힘든 일을 주저하게 되고 힘들어하다가도 그 일을 마치게 되면 힘겹게 여겨지던 일상의 일들이 아주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살아있기에 불안과 고통이라는 흔들림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죽은 것은 흔들리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우리가 '나'라고 이름 붙인 이 몸과 마음 역시 살아있는 자연이어서 흔들리고 변화할 수밖에 없으며 그 흔들리고 변화하는 것에 나라는 고정된 이름을 붙였기에 그 변화에 따라 함께 흔들리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몸과 마음이라는 신비에 자연이라는 이름을 돌려주자. 변하지 말아야 할 존재라는 이름을 벗어놓고 이미 본래 그러한 자연으로 다시 놓아주면 그 흔들림조차도 얼마나 아름다운 흐름이자 춤이 되는지 스스로 느낄 수 있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나무가 보이는가.

바람에 따라 떠밀려 흐르는 구름이 보이는가.

그 무엇이 나라고 이름 붙이며 흔들리고 떠밀리지 않으려고 고통스러워하는가.


고통은 삶을 사랑하는 이들의 춤이다. 살아있음을 증거 하는 몸과 마음의 춤인 것이다. 기꺼이 고통에 흔들리자.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떨릴 때 우리의 삶은 그 본질을 회복한다.


그리하여 고통은 우리가 자신의 본질을 잊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며, 본질로 돌아오라는 초대다. 이는 고통을 저항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진정한 자아실현이란 지금 여기에 없는 무엇을 더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항상 존재해 온 우리의 본성을, 그 본질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지금 없는 것을 채워 넣고자 달려가고 있다면, 그 없는 것이 채우고자 하는 우리의 본질은 이미 우리 안에 다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고 아무것 더 채우지 않아도 이미 온전한 우리의 본성을 다시 기억하고 확인하면 그뿐이다.


자신의 고통 곧 살아있음의 역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세상도 거기에 화답할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흔들리며 춤추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면 고통이 될 수 있으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 변화 자체가 곧 삶의 춤이요,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것들에 어우러져 함께 흔들리는 것이다.


이미 온전한 우리의 의식, 그 위에 그려지는 우리들의 경험은 한 편의 영화처럼 온 우주의 춤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그 영화 속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그 영화를 지켜보는 의식, 더 궁극적으로는 영화 곧 꿈에서 깨어난 앎, 깨어남, 의식일 뿐이다.


작든 크든 어떤 고통 속에 있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의 흔들림을 응원한다. 살아있기에 주어지는 우리들의 역동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할 때이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약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영복,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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