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호이안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여행 11화

by 김지현

호이안은 오랜 국제무역항으로 유명 관광지답게 버스에서 내린 순간부터 여관을 소개해주겠다는 오토바이 기사들이 줄을 섰다. 온갖 방법으로 거절의 뜻을 전해보다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노’라고 하면 말이 길어지고 ‘노 땡큐’라고 해야 내 의지가 접수된다는 걸 터득했다.

숙소를 찾아다니다가 구도심을 지나게 됐다. 구도심에는 오래된 가옥을 개조해 만든 상가들이 늘어서 있었다. 전통이라는 이름의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었다. 어딜 가나 발에 채는 게 전통이었고 그곳에서 전통은 표준화된 하나의 스타일이자 물건을 팔기 위한 촌스러운 포장에 불과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호이안에 싫증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

구시가지는 지나다니며 본 것으로 충분하니 근처 바닷가에 가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삼십 여 분을 달리자 바다였다. 야자수가 있는 바다는 처음이었는데, 야자수만큼 바다와 잘 어울리는 나무가 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야자수 그늘에 앉아 파란 바다를 바라보았다. 인도차이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가 살던 곳의 추위를 잊은 채 인도차이나의 햇빛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현실이라기엔 너무 아름다운 그 바다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살던 곳의 추위를 떠올렸다.

서울은 50년 만에 최저기온을 기록 중이라고 했다. 지금 나의 집엔 두꺼운 권태 대신 차가운 냉기가 덮여있을 터였다. 권태에서 벗어나려고 집을 떠났지만 내가 어딜 가든 권태는 나를 따라 다녔다. 아무리 멀리 가도 나는 나일 수밖에 없고 지겹도록 같은 주제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달라진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테마가 반복된다고는 해도 주위 환경이 달라지니 머릿속에서 상연되는 이야기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이 달라졌고, 그것만으로도 이야기는 한결 들을만해졌다. 살 것 같았다. 그날은 뜻밖의 재회도 기다리고 있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바닷가 마을에 자전거를 세웠다. 바다를 보려면 낮은 풀들이 누워있는 흰 사구를 넘어야 했다. 바다를 향해 한 걸음씩 언덕을 오르는데 뜻밖에도 가슴이 설레더니 언덕 너머로 파란 바다가 드러나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감정인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무전여행을 했다. 우리는 바닷가 마을 어귀에 들어설 때면 앞 다투어 바다를 향해 달리곤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바다를 보고 싶어서였다. 바다를 향해 달리는 걸음걸음이 설렜고 푸른 바다가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면 어김없이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바다를 봐도 무덤덤하기만 했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니까 한때 바다를 향할 때마다 찾아오던 그 감정들이 아주 떠나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오랫동안 나를 떠나있던 그 기분 좋은 감정이 돌아온 것이다. 무슨 바람이 불어 다시 온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오랜만에 그 감정을 즐기며 자전거를 타고 이 해변 저 해변으로 돌아다녔다.

바다에서 몇 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엔 강이 흘렀고 강을 따라 화사한 마을이 이어졌다. 마을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자전거를 세웠다. 어느 집 앞에 테이블 두어 개를 놓고 커피를 팔기에 들어가 앉았다. 손님보다는 가족들이 쉬려고 만든 공간 같았다. 그날도 가족들이 모여앉아 있었다. 지척에 아름다운 바다와 강을 두고 그렇게 예쁜 집에서 살다니 복 받은 사람들이다. 그 집 딸이 말을 걸어왔다. 리조트 레스토랑에서 일을 한다는 그녀는 단도직입적인 어조로 베트남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나는 사람들이 불친절하다고 대답하는 대신 날씨가 좋다고 대답했다. 그녀 역시 불친절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척하던 사람들과 똑같은 표정과 말투로 가족들을 한 명씩 소개하더니, 커피를 더 마시겠는지 물었다. 친절한 뜻으로 하는 말이었으나, 표정과 말투는 무뚝뚝한데다 사뭇 호전적이기까지 했다.

밤에 구도심에서 보름달맞이 제등 행사를 한다고 했다. 제등행사에 대한 기대는 없었지만 밤에는 달리 할 일이 없으니 거기라도 가보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니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거리에는 사람들이 행렬을 지어 구도심으로 향하고 있었다. 구도심에 가까워질수록 붉은 등불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구도심에 접어들자 어둠 속이 붉은 등불로 가득했다. 어느새 나는 등불에 홀려 이 골목 저 골목을 떠다녔는데, 골목의 오래 된 집에선 그 집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비단옷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 소리에 취하고 등불에 취해 인파에 밀려다니다 보니 강가였다.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강물에 등을 띄우고 있었다. 강물에 점점이 떠다니는 붉은 등이 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호이안 구도심에 대한 경멸에 찬 생각들을 모두 취소했다. 베트남의 축제는 전시용이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한 흥겨운 놀이이자 종교의식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정말 기도를 많이 했다. 모든 특별한 날은 특별히 기도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들이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모든 장소에서 기도하고 모든 것에게 기도하는 걸 보다 보니, 내가 어쩌다 아무 것에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는지 생각하게 됐다.

어릴 적 나는 미신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있었다. 거기에는 한국근대소설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TV 문학관의 영향이 컸다. TV문학관에선 무속신앙을 믿는 어머니와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아들 간의 갈등을 자주 다뤘다. 무지한 어머니가 서양귀신이 씌었다면서 아들의 책을 불태우고, 병든 자식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푸닥거리만 하다가 자식을 죽게 만들고, 미쳐서 집에 불을 지르고 자신도 타죽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어릴 적 미신의 무지몽매함 앞에서 느꼈던 충격과 공포가 지금도 생생하다.

어른이 되며 TV문학관의 영향에서 차차 벗어나게 됐고, 과거의 삶의 방식을 미신이라고 규정하는 시각을 오히려 비판적으로 보게 됐다. 그러나 산과 물과 주변의 모든 것들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그것들에게 기도하는 마음은 내게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가끔 산길의 돌탑이나 밤하늘의 보름달을 향해 기도를 해보려 하지만, 그런 행동을 실없고 어색하게 여기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이내 그만두게 된다. 나는 여전히 TV문학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밝은 낮에 자세히 보고 싶어 구도심에 다시 갔다.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모두 가진 호이안에 감탄하며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라오바오에서 만났던 러시아 청년 이반을 다시 만났다. 같이 저녁을 먹게 됐는데, 그가 채식주의자라 채식주의 메뉴가 있는 식당엘 갔다. 메뉴엔 vegeterian noodle soup, noodle soup for vegeterian, vegetable noodle soup이 있었다. 어떻게 다른 진 알 수 없었지만 가격이 달랐고 제일 싼 vegetable noodle soup을 시켰는데 나온 걸 보니 토마토를 올린 라면이었다. 나는 그가 추천한 bouddhist mont soup을 시켰다.

말상대를 만나자 베트남에서 겪은 바가지를 성토하고 싶어졌다. 이반은 내 얘기를 듣더니, 자기가 한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가게 돼있으니, 그들은 자기 행동의 대가를 받게 될 거라고 했다. 인도종교에 심취한 그는 카르마를 믿었다. 그렇다면 나도 지은 업을 받고 있는 것일까? 짚이는 데가 있었다. 부자 외국인에게 바가지 씌우는 그 심리를 나도 모르지 않는다. 나 역시 바닷가에서 모래 한 줌 가져가봐야 티도 안 난다는 생각으로 어려서부터 좀도둑질을 일삼았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더 이상 물건을 훔치는 긴장을 견디고 싶지 않았던 것 뿐, 죄의식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거짓말하고 사기 친 그 인간들도 십중팔구 죄의식조차 없을 터였다. 더 화가 났다. 스물다섯에 마약을 실컷 할 작정으로 인도에 갔다가 열흘간의 명상코스를 통해 마음의 눈을 떠 마약은 물론 술 담배 고기까지 끊은 후 꾸준히 명상수행을 하고 있다는 이반은 내게 명상을 권했다.

오후엔 이반의 숙소에 놀러갔다. 그의 방은 꼭대기 층이었는데 정식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나무계단을 타고 한 층을 더 올라가니 구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원래 물탱크 창고였던 곳을 개조해 방을 놓은 것 같았다. 천장이 낮은 복도를 따라 5개의 방이 있었다. 그런데 이반이 방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물탱크 옆엔 바닥이 없이 철망이 가로놓인 공간이 있었는데, 서커스 하듯이 그 위를 가로지르면 딱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크기의 관 같은 방이 있다고 했다. 일인용 침대가 전부인 3달러짜리 방이었다. 그 방엔 중년의 백인 남자가 장기투숙하고 있는데, 불행한 얼굴을 한 그 남자는 매일 아침 작은 슈트케이스를 끌고 나갔다가 저녁 때 들어온다고 했다. 여관에는 그의 정체를 궁금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가 누구와도 인사조차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정체를 모른다고 했다.

이반의 방은 햇빛이 잘 들고 전망이 좋아서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런데 화장실이 문제였다. 방은 여섯 개나 되는데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화장실이 빌 새가 없었다. 이반은 일층까지 내려가 커피 물을 받아온 뒤, 양철통에 물과 커피를 같이 붓고 그 속에 열선 모양의 전열기를 넣어 커피를 끓였다. 러시아 가정에서는 보통 필터를 안 쓰고 그렇게 커피를 만든다고 했다. 그는 샌드위치도 방에서 만들어 먹었다. 바닥에는 각종 샌드위치 재료들이 놓여있었는데 그 중에는 두부도 있었다. 두부가 들어간 샌드위치라니, 한번 맛보고 싶었지만 배가 불러서 시도는 못 했다.

커피를 마시고 나와 이반과 강가를 걸었다. 강가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묶여있었는데 모두 베트남사람처럼 쭉 찢어진 눈을 가지고 있었다. 베트남에선 배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대신 뱃머리에 눈을 그려 넣었다. 그 옆을 걷자니 배들의 시선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이반은 베트남 여행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5년 전 그는 여자 친구와 자전거로 베트남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호찌민을 향해 가던 길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여자 친구와 말다툼을 해서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가고 있었는데,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접근하더니 가슴을 만지고 도망친 것이다. 그러나 너무 멀리 있었던 그는 여자친구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나자 갑자기 주변이 온통 위협적으로만 느껴져서 둘은 자전거를 접어들고 호찌민 행 버스를 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버스가 중간에 서더니 호찌민에 안 간다면서 둘에게 내리라고 했다. 차비라도 돌려달라고 하다가 차장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자 승객들이 합세해 빨리 내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난 이반은 차비 대신 차 안에 있던 생수통을 들고 내렸다. 그 생수통을 팔려고 가지고 다니다가 생수통 입구로 바짓가랑이를 쳐서 바지는 찢어지고 생수통은 터지고 여자 친구는 울고 그야말로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 그 후 이반은 베트남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가지게 됐고 그걸 극복하고 싶어서 베트남에 다시 온 것이었다. 이반은 이번 여행을 통해 베트남에 대한 감정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호찌민엔 안 간다고 했다. 호찌민을 향해 가는 나에게 참으로 용기가 되는 얘기였다.

keyword
이전 10화라오바오 탈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