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여행 12화
호찌민까지는 동쪽의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는 서쪽 고원지대를 경유하기로 했다. 관광지를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이른 아침 콘툼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달려드는 호객꾼이 한 명도 없었다. 정말로 관광지 밖으로 나온 것이다. 터미널에서 두리번거리는데 배낭을 앞뒤로 멘 백인 남자가 들어왔다. 다가가 콘툼에 볼만한 게 뭐가 있는지 물었다. 그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가면 뭔가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는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한 번 찾아보라고 하고는 떠났다. 자, 이제 내가 이 도시의 유일한 관광객이었다. 감개무량했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아마도 그 작은 도시 근처에는 멋진 산이 있고 소수족 마을도 있고 코끼리와 온갖 희귀 생물들이 살고 있겠지만 거기에 갈 방법이라곤 없었다.
아무 할 일이 없었으므로, 우산을 양산 삼아 쓰고 동네를 걸어 다녔다. 한산하고 깨끗한 동네였다. 베트남은 어딜 가나 미용실이 많았는데, 미용실에선 머리 손질 뿐 아니라 손발톱 손질과 귀 손질을 했다. 그날따라 귀 손질을 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미용실마다 미용사들이 헤드랜턴을 밝히고 손님들의 귀를 손질하고 있었다. 나도 미용실 의자에 누워 각종 케어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머리를 자르긴 좀 망설여지고 발은 남에게 내밀기 너무 더럽고 귀는 여러 달째 염증이 있었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꽤 큰 카페였는데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딱딱 소리를 내면서 씨앗을 까먹고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틈만 나면 씨앗을 까먹었다. 앙코르 숲에서 본 원숭이처럼 말이다. 그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들이 바나나며 과자를 받아먹는 동안에도 시선 한 번 팔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씨앗만 까먹었다. 얼마나 맛있어서 그러는지 나도 한번 먹어보려고 바닥을 살펴보았지만 죄 원숭이가 먹고 버린 쭉정이들뿐이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옆 자리에서 씨앗을 한 줌 얻어 먹어보았다. 아무 맛도 없었다. 그런데 한번 시작하니 씨앗 까기를 멈출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맛이 아니라 껍질을 까는 행위였다. 나는 시간을 죽이는 그 의식에 적극적으로 동참했고, 어느새 내 탁자 밑에도 죽은 시간의 껍데기들이 수북이 쌓여갔다. 다니면서 우리에 갇힌 원숭이들을 여럿 보았다. 원숭이들은 하나 같이 작은 우리 안을 미친 듯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우리에 씨앗 한 줌만 넣어줬어도 그 불안한 행동을 멈출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여전히 우리 안을 미친 듯이 오갈 영장류 동료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구경하기에 하루면 지나치게 충분한 도시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기로 하고 터미널에 차표를 사러갔다. 매표소에서 지도 위의 도시를 가리키며 버스시간을 물을 때마다, 매표원 아주머니는 서랍에서 돋보기를 꺼내 끼고는 느릿한 베트남어로 대답했다. 또 다른 고원도시 부온마투옷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그러고 나니 달리 할 일도 갈 데도 없어서 터미널 벤치에 앉았다. 천장 높은 홀은 바람이 잘 통해 시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노점 주인이 해먹에 누워 흔들거렸고,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족집게로 서로의 흰머리를 뽑고 있었고, 저만치 벤치에서는 청년 둘이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슬슬 졸음이 와서 나도 벤치에 누워볼까 하는데, 경비가 들어오더니 누워있는 청년들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일어나 앉는 청년들을 보면서 터미널을 나왔다.
중심도로를 벗어나니 논밭이었다. 논두렁에 앉으니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가 삐그덕 삐그덕 문 열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 백 미터에 이르는 도로를 여섯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여섯 번째 그 길을 걸어 숙소로 들어가면서 우리에 갇힌 원숭이들을 떠올렸다. 쉴 새 없이 우리 안을 오가다니 안 힘들까 싶었는데, 그 행동을 멈출 수 없을 뿐 원숭이들도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일 고원을 달려 부온마투옷에 도착했다. 부온마투옷은 콘툼과 비슷한 중소도시였다. 중소도시는 콘툼으로 족했으므로, 근처에 있는 욕돈국립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요행히 터미널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욕돈국립공원에 내렸을 때는 이미 사방이 깜깜했다. 멀리 불빛이 보이기에 따라 들어가니 거기가 공원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에서 잠 잘 곳을 물었더니, 직원이 손전등을 들고 앞장섰다. 칠흑 같은 강변에 시커먼 여관 건물이 서 있었는데 손님이 나 혼자였다. 복도 등을 켜자 온갖 날벌레와 도마뱀이 들끓었다. 그것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에 들어가자마자 덧문을 꽁꽁 닫아걸었다. 그러나 드나들 통로가 어디 창문뿐이겠는가. 화장실 변기 뚜껑을 열었더니 황금 개구리가 앉아있었다. 순간 변기는 예쁜 물웅덩이로 변했는데, 깜짝 놀라 물 내리는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황금 개구리는 사라졌고, 물웅덩이는 다시 평범한 변기로 돌아오고 말았다.
텅 빈 건물에 혼자뿐이라는 걸 잊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를 했는데 인터뷰이 중엔 여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말은 남자들이 도맡아 하고 여자들은 배경으로만 나왔다. 농가에서 돼지를 잡는 장면이 이어졌다. 칼로 돼지 멱을 따고 껍질 벗기는 걸 모자이크 처리 없이 보여줬는데, 카메라는 낫으로 벼 베는 농부를 잡을 때만큼이나 담담했다.
불안해서 얕은 잠 속을 헤매다가 날이 밝은 뒤 나가 보니, 숙소는 공원 관리사무실 단지 내에 있었다. 식당, 여관, 체육관 등의 부대시설을 갖춘 제법 큰 단지였다. 공원에 들어가려고 알아보니, 공원이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혼자는 못 들어가고 꼭 가이드를 동반해야 한다고 했다. 비용이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가이드와 같이 다니고 싶지 않았다.
공원에 들어가는 대신 주변 마을을 돌아다녔다. 목축을 하는 마을이었다. 들판에서 소, 돼지, 닭 그리고 코끼리가 같이 풀을 뜯었다. 걷다가 햇빛을 피해 카페에 들어갔다. 아침 10시부터 주인 부부가 어린 아이를 안고 좀비영화를 보고 있었다. 피를 뿜으며 날아다니는 좀비들의 찢긴 사지와 짐승소리 같은 괴성이 푸르고 고요한 들판의 원시성과 어쩐지 잘 어울렸다.
아침에 직원들이 구내식당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는 걸 보면서 나갔는데, 점심에 숙소로 들어가면서 보니 직원들이 술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전골 안주에 맥주를 궤짝으로 놓고 마셨는데 바닥엔 빈 맥주 캔이 가득했다. 얼굴이 불콰해진 상사가 여직원의 손을 잡아끄는 장면도 목격됐다. 여직원이 손을 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 상사는 나를 흘낏 쳐다보았다. 그건 베트남에서도 눈치 보이는 행동인가 보았다.
숙소를 향해 가는데, 강가에서 사내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하게 들려왔다. 강가에는 한 그루이면서 수백 그루이기도 한 나무가 오십 여 미터에 걸쳐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아이들 웃음소리는 그 너머에서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숲을 이룬 무수한 가지를 가로질러 다리가 놓여있었다. 다리 위에 올라가니, 아이들이 타고 온 자전거와 옷가지가 놓여있고 나뭇가지들 사이로 수영하는 아이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나도 아이들처럼 강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물 위로 숲을 이룬 나무들을 지나 강에 들어갈 수 있을까? 잠시 후 수영을 마친 아이들이 물가에서 다리까지 수평으로 뻗어있는 나무줄기를 타고 걸어오는 걸 보고서야 방법을 알게 됐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강에 혼자 들어가긴 무서웠다.
다시 숙소로 향하는데, 덤불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 보였다.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가다보니 길을 가로질러 쇠사슬이 놓여있었다. 쇠사슬을 따라 가보니, 코끼리가 한쪽 발에 쇠사슬이 묶인 채 나무 그늘에 서있었다. 위협적인 크기였기 때문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하는 양을 지켜보기로 했다. 코끼리는 코끝을 흔들면서 가만히 서있었다. 그러다가는 한동안 한 발을 들고 서있기도 하고, 또 한참이나 입을 벌린 채 있기도 했다. 원숭이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였는데, 코끼리 속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숲속을 돌아다니다가 코끼리가 있던 자리에 다시 갔다. 그런데 쇠사슬만 있고 코끼리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멀리 강을 보니 한 남자가 예수처럼 물 위에 서있었다. 가만 지켜보니 그는 잠수한 코끼리 등 위에 서있는 거였다. 코끼리는 사내를 태우고 맞은 편 강둑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더니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숙소로 가는데 뭐가 발등을 훅 넘어갔다. 내려다보니 뱀이 저만치 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여관 건물에서 혼자 잘 게 종일 걱정이었다. 대책 없이 하루가 갔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뭔가가 무릎을 툭툭 쳤다. 내려다보니 구내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누렁이가 먹을 걸 달라며 쳐다보고 있었다. 끝이 접힌 짧은 귀와 작고 순한 눈을 가진 개였다. 소시지며 돼지고기가 느끼해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남은 걸 죄 바닥에 던져줬다.
식사를 마치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여관 복도를 지나는데, 누렁이가 따라와 있었다. 고기 몇 조각에 마음을 주다니 기쁜 마음에 같이 있고 싶어서 계단에 앉았더니 누렁이도 옆에 앉았다. 해가 지는 강변에서 사내아이들이 검은 실루엣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우리는 붉은 노을 위로 어둠이 내리고 하얀 별빛이 또렷해지도록 나란히 앉아있었다. 먼저 일어난 건 귀신만큼이나 모기를 무서워하는 나였다. 얼마 후 누렁이 짖는 소리에 나가보니, 누렁이가 강물 위에 어른대는 불빛을 보며 짖고 있었다. 그 사이 강물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고 까만 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밖에 누렁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방문을 열어보았다. 문 앞에서 누렁이가 반갑게 맞았다. 고맙게도 밤새 그 자리에 있어주었던 것이다.
아침부터 주방은 분주했다. 직원들이 오토바이로 각종 식재료를 실어 날랐고 주방에선 요란한 도마질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굉장한 아침 식사를 하게 될 줄로 잔뜩 기대하고, 식당주인이 베트남어로 하는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막상 나온 건 라면이었다. 종이 같은 면을 씹으며, 마당에 쌓아놓은 두꺼운 장작에 휘발유를 부어 불을 붙이는 걸 보고 있는데, 뒷마당에서는 짐승의 비명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누렁이가 보이지 않아서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 그건 돼지 잡는 소리였다. 돼지는 쉽게 죽지 않았다. 남자 여럿이 돼지를 붙들고 씨름하는 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러다 둔탁한 소리가 몇 번 나더니 마침내 조용해졌다. 라면 값을 계산하면서 뒷마당을 들여다보니 남자들이 새끼돼지 내장을 분류하고 있었다. 상급자가 한 턱 내는 거라고 했다. 날마다 파티라니 참 즐거운 직장생활이 아닌가. 장작이 다 타자 대나무에 꿴 고기를 장작 숯에 올려 굽기 시작했다. 때맞춰 마당엔 만찬에 초대받은 손님들의 승용차가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떠나기 전에 누렁이와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누렁이가 안 보였다. 사랑에 빠지는 건 힘든 노릇이다. 누렁이 찾기를 포기하고 짐을 챙겨 방을 나서려는데, 문 앞에 누렁이가 나타났다. 오래도록 석별의 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누렁이는 금세 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부온마투옷으로 가는 버스에서 옆자리 청년이 내 트렁크를 가리키며 베트남어로 말을 시켰다. “베트남말 못해요.”라고 한국어로 대답했다. 버스가 시내로 접어들면서 청년이 또 뭐라고 했다. 내리는 곳을 묻는 거려니 짐작하고 “버스터미널!”이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리라고 손짓을 해보였다. 종점이 버스터미널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불안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도 계속 차창 밖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차창 밖으로 웬 남자가 소리치는 게 보였다. 남자는 달리는 미니버스의 차문에 매달린 채 긴 팔을 흔들며 뭐라고 소리쳤는데,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미니버스는 내가 탄 버스를 따라오며 경적을 울려댔고, 남자는 점점 절박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한 채로. 프랑스 배우 베노이트 마기멜을 닮은 남자였고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마침내 버스가 멈추자 남자가 버스에 오르더니 애절한 눈빛으로 내게 뭐라고 했지만, 끝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알고 있던 대로 버스 종점이 터미널이 맞았다. 당일로 호찌민에 가고 싶었지만 차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호찌민 가까이에 있는 갓띠엔 국립공원에 가기로 했다. 창구에서 차표를 문의하는 내내 헬멧 쓴 남자가 통역을 자청했다. 한 눈에 오토바이 기사였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터미널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단 한 사람이라 아주 뿌리칠 수는 없었다. 창구에서는 갓띠엔 가는 버스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오토바이 기사는 그럴 리가 없다면서 버스기사를 찾아 주변 식당을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통화를 하더니 1시에 버스가 올 거라고 알려주었다. 예상과는 달리 그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떠났다. 고맙고 미안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가 말한 버스는 2시가 넘어도 오지 않았다. 갓띠엔 가는 걸 포기하고, 다음 날 출발하는 호찌민행 버스표를 끊었다.
터미널 근처 여관에 들어갔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여관주인은 숙박비가 십 만동이라는 말만 겨우 했다. 가격이 너무 쌌기 때문에 다시 확인했다. “십 만동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 짐을 풀고 돈을 찾으러 갔다.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을 때마다 긴장하게 됐다. 필요한 금액을 몇 번이나 계산한 뒤 백만동을 인출하겠다고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백만동이 나왔다. 영수증에도 이백만동이 찍혀있었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해야 해서 여관비를 미리 계산했다. 십 만동을 냈더니, 여관주인이 고개를 흔들며 종이에 18만동이라고 적었다. 서로 간에 공유하는 언어가 없으니 따질 수도 없었다.
장을 보려고 근처 대형마트에 갔더니 입구에 가방을 맡기라고 했다. 가방을 맡기고 빈손으로 매장을 돌아다니다가 어깨에 멘 가방이 없어진 줄 알고 몇 번이나 소스라쳤다. 현지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에 돈다발을 들고 다녔는데, 나는 몇 푼 안 되는 돈을 지니고도 벌벌 떨었다. 마트에서 나와 횡단보도에 서있는데 어떤 여자가 다가오더니 손으로 네모를 그려 보이며 “유어 백, 유어 백!” 하면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마이 백?” 반사적으로 어깨에 멘 가방을 확인했다. 가방은 무사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내게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일까? 훈민학원, 고전압주의, 하나투어, 혁성운수, 개별화물....... 의미가 사라진 한글들이 도로를 오가고 있었다.
부온마투옷의 밤은 적막했다. 불을 끄고 누우니 창문 위로 시커먼 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낯선 곳에서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하는 편인데, 그동안 주위의 소음 덕분에 무서움을 잊고 지냈다는 걸 깨달았다. 눈을 감고 방문 앞에 엎드려있던 누렁이를 떠올렸다. 마음이 놓였고 편히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