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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파티

그가 떠난 후(21)

by 김영주

감사했던 시험 결과를 받아 들자마자 바로 일주일 만에 병원 통역센터와 인터뷰 약속이 잡혔다.

줌(Zoom)으로 진행된 인터뷰 내내, 계속된 긴장감을 조심스레 삼키긴 했었지만 감사하게도 일자리를 허락받았다. 확실히 주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전쟁처럼 두려웠던 시간들을 보내고 감사한 결과는 평안의 자리로 안내하였다. 함께 기도해 준 아이들의 축하를 받고 그의 사진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핸드폰에도 그의 사진은 정리되어 있지만 그래도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좀 더 크게 보고 싶었다.

'나 정말 좋아! 내가 잘해서가 아닌 건 알아. 그래서 더 감사해. 사랑해'

그가 있었으면 아마 우리는 엄청 시끌벅적 축하를 했을 거다. 모두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면 아이들을 바로 불러 모아 당장이라도 나가 맛난 식사 하며 축하하자 했을 것이고 모두 외출 중인 시간이었다면 가족 단톡방은 축하 메시지와 이모티콘으로 떠들썩했을 것이고 오늘 저녁은 모두 함께 파티라고 선포했을 것이다.

그런 아빠와 살아온 아이 들이라서일까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파티를 해야잖냐고 한다. 내가 그냥 웃고만 있으니 딸아이가 오늘은 자기가 쏠 테니 함께 나가 맛난 식사를 하자고 한다.

'이젠 파티를 해도 될까?' 그가 떠나기 전 마지막 파티는 딸아이의 생일날이었다. 외식을 하고 돌아와서 우리 가족의 룰이 된, 생일자인 딸아이가 식탁 가운데 자리에서 케이크를 받았고 모두 헤피벌스데이를 불렀었으며 남편은 언제나처럼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려 주었었다. 이후 그의 생일을 포함해 네 번의 생일이 있었고 언제나처럼 생일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식당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었지만 그와 함께 했던 때와는 달랐었다. 매번 셋 만의 식탁은 허전하여 식사를 마친 후엔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쓸쓸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나서므로 최근 개업하여 궁금했다는 일식집으로 향했다. 셋이 앉았는 테이블은 여전히 어색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좋은 소식이 있었으니 들떠보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아이들은 제일 맛있는 걸로 먹어보자고 메뉴를 탐색했고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식당의 인테리어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같은 성도회의 친구가 부부동반의 모임을 온 모양이다. 그 친구에게도 여러 일들이 있었고 그 친구는 2부 예배를 나는 3부 예배를 드리므로 한동안 안부를 나누지 못했던 터라 더 반가왔었다. 식사를 마치고 딸아이가 호기롭게 계산대에 서서 두리번 거린다. "아까 그 집사님이 계산하셨대요." 일행과 함께 있는 친구를 방해할 수 없어 눈인사를 건네며 나서려는데 그 친구가 급히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어디선가 통역과정을 잘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기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은 취직이 되었다는 따끈한 최신 소식을 전하니 나를 꼭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따뜻한 친구이다. 그리고 이렇게 파티는 시작되었다.


그동안 함께 기도해 준 목장식구들과 몇몇 분들께 소식을 전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니 따스운 격려와 축하의 메시지와 함께 모두 만나야 한다고들 한다. 그렇게 폰 달력에 빼곡히 점심 식사 약속이 잡혔었다. 주일 교회에서도 누군가에게 소식을 들었다며 달려와 안아주는 분들 때문에 또 뭉클한 감동이 일었었다. 서로 폰 달력을 펼치고 또 약속을 정한다. 아들아이는 주 중 3일간은 재택근무라 아이들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나선다. 공부하는 동안 주일 예배와 주 1회 마트 장보기 외에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아 이전엔 매주 하던 주유를 한 달에 한번 했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외출을 반긴다. "오늘도 파티네요? ㅎㅎ" 현관 옆 방에 사는 아들아이가 외출하는 나를 배웅하며 내 어깨를 토닥인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모두들 그 나이에 정말 수고 많았다고들 한다. 그렇지! 이 나이에. 젊어서부터 언젠가는 해 볼만한 일이라 생각했었지만 딱히 마음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떠난 후.... 아직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던 때, 몇몇 친구로부터 권유를 받으며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 그전에도 공부해 볼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에 있는 학교를 오가는 통학이 자신 없어 늘 마음을 접곤 했었다. 그런데 마침, 올해부터 전적으로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코로나 시절에도 잠시 온라인으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는데 이후 다시 대면 수업으로 바뀌었고 코로나 시절 온라인 수업을 할 때에도 과정 평가를 위한 시험은 학교에 와서 치렀다는데 올해는 과정 평가 시험조차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첫 해라고 했다. 운전경력 30여 년에 내비게이션과 구글 길 찾기 서비스 같은 신문물을 누리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운전엔 자신이 없는 나에게 우리 집에서 꽤 먼 낯선 지역에 있는 학교까지 통학할 필요 없는 조건이 된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한 친구는 주님이 참으로 나를 위한 맞춤형 통학 조건을 아주 깔끔하게 조성해 두셨다고 했었다. 정말 그랬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 잠시 학교에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차에 장착된 네비와 구글 길 찾기를 동시에 틀어 놓고도 고속도로에서 진입로를 잘못 들어 헤매다 겨우 찾아갔던 일이 있었다. 역시 내 형편 다 아시는 주님이시다.


지난 금요일에는 교회에서 교구 연합예배를 드렸다. 공부하는 동안, 수업이 오후 5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진행되므로 저녁에 드리는 목장예배를 드리지 못했었는데 드디어 복귀하게 되었다. 그간 다시 교회로 돌아온 옛 목장식구 가정이 합류하여 더욱 좋았다. 그 가정의 아내 집사님은 그가 떠난 후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운전 중 선명하게 내 안위를 당부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분이다. 연합 예배를 마치고 친교실에서는 풍성한 간식과 흩어 모인 조별 게임을 통한 교구 파티를 했었다. 그리고 나는 전설의 사구동성 게임에서 하나의 입으로 출전하여 맹렬히 활약(?) 하기도 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이렇게 많이 웃어보기는...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매 주일 교회 문턱을 넘을 때마다, 눈물을 닦았었는데... 한동안은 마주치는 사람들의 낯을 피하기도 했었는데.... 살짝 입꼬리를 달싹이는 미소조차 어려웠었는데.... 언제까지 일지 모를 나의 삶이 버겁기 그지없었는데... 스스로가 불행의 결정체처럼 생각되었었는데... 어느덧 파티, 나는 다시 웃고 즐기고 또 가끔은 행복한 것도 같다. 나는 늘 그가 함께 있다고 믿고 있다. 딸아이의 꿈에서 멋지게 나타나 그가 그렇게 말했었다고 한다. "아빠가 있잖아! 늘 함께 있을 거야! "라고. 육신은 유한하나 적어도 성도의 영혼은 영생을 누릴 테니. 오늘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그도 웃고 있을 것 같아 좋다. 내가 다시 행복해할 때, 그도 행복해하며 다소나마 마음을 놓을 것 같아 좋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도 그에게 말을 건다. "오늘도 보고 싶네. 정말 오랜만에 많이 웃었어. 보고 있었지? ㅎㅎ......... 사랑해, 언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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