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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나 Jan 03. 2022

나이듦에 감사하다

사랑이 끝나고 사랑이 시작된다

이제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당신에게 

나에게도

그 모든 말은 처음이었다는 것을.

엄마라는, 

아내라는,

중년이라는

혹은 노년이라는 말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는 것,

매일매일 처음 마주하는

낯선 날들이었다는 것.

에도

그 불편한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애를 다 보니

여기저기서 균열은 일어났고

슬픔이 복받쳐 눈물을 참지 못할 때도

화가 치밀어 올라

설거지하던 그릇을

내동댕이 칠 때도 있었던 거라...

모두가 처음 겪는 인생의 민낯 앞에

조금도 원하던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설  때

놀라고 서럽고 분하고 애처로운

그 마음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중년의 언덕을 오르고 있을 터.


사람은 어느 때가 되어야 

성숙한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50이라는 나이의 언저리에

놀란 듯 서 있는 나는

여전히 청년의 그때 그 마음을 품고 있건만(!)

이제서야 

자신의 일을 위해 가족을 내팽겨 친 것처럼 보였던,

그러나 실상

참 외롭고 힘들었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보고 있자니 답답.

지난 세월의 시행착오 떠오를 때면

후회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서른여덟이 되었을 때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나이만 든 스스로를 보며

자책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아기아기 한 시절이고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젊음의 한 때였다.

하기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노년의 여성들을 뵐 때면

지금 내 나이를 '뭐든지 할 수 있는 때'라며  

'좋을 때'라는 말씀을 덧붙이신다.

하세월을 살아오신 분들이 그러하다니

그 말씀은 신뢰할 만하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이전보다 느려졌고

마음은 약해다.

체중계가 한계치를 넘어서고

바지 단추는 넘치는 배를

위태롭게 버티고 있어도

체중 조절에 대한 절박함보다는

안 아픈 게 최고라며

자기 직전까지

보양식을 마다하지 않는다

늘어나는 흰머리는

체념 한 스푼을 담아

방치한 지 오래다.

그렇게 엄마도 나이 들었 거네.

이제야 깨닫는 이 답답함을 어찌할.


인생의 솔 메이트,

그리스로 떠나 살자던

감미로운 말을 건넸기에

부모님의 반대에도

미국으로 가출을 감행하게 만들었던

그때 그 멋진 남자도

이후 일어났던

그리스의 국가부도에 쓴웃음 날리게 된 날처럼(!)

속을 뒤집어 거품 물게 하고

내 눈을 찌르고 싶게도 만드는

크레이지 모드(?)를

파도 타듯 넘나들며

늙더라,

늙어가더라.


그러나 나는

이런 나이듦에 감사한다

세상 살아보니

좋은 대학

좋은 남편

세상 명예

별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날 줄 그어 가며 읽던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의 인생

늙음과 죽음뿐'이라던

정확한 현실 인식,

죄성 강한 인간은

좀 잘되면 교만함으로

좀 안되면 절망과 낙심 사이를 오간다

우리의 실체가 그러한 가운데

늙음과 죽음을 향해가는 것이 인. 생. 이. 다.


그러니

이전의 목표는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인생의 대단한 성취도 중요하나

나이듦의 여정에

어른으로서의 성숙함이

날이 갈수록 더해가기를 원한다.

불같은 사랑은 진작에 끝났지만

새로운 사랑을 다시 기대한다

그 사랑은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고

내가 배척하던 것들에 대한

수용 혹은 포용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살아보니

솔 메이트는 밥 말아먹어버린

그다지 생각만큼 멋지지 않은 남편이었지만

연약한 나 같은 인생과

살아준 것도 땡큐,

딸아이 아버지의 자리를 지킨 것도

땡큐다.

비단 남편뿐만이 아니다.

자유 독립만세를 외치며

어미의 애를 끊어 놓는

무남독녀 외딸의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거

그것이 사랑 아닌가  싶다.

나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삶의 현장,

그러나 그마저도 지키려고

버티고 버티는

어른 놀이하느라 지친 인생 내색도 않는

담담한 자리 지킴을 해내는

당신을 바라보는 것

나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내게는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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